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48일차의 기록
명절과 연휴라는 이름은 이제 내게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가족과 사회의 흐름 속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그 리듬에 휩쓸리게 된다.
평소처럼 새벽에 몸을 일으켜 독서를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잠시 내려놓았더니 내 몸은 놀랄 만큼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였다.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이 평소보다 늦어졌고 그 잠깐의 느슨함이 주는 낯선 여유가 내 하루의 시작을 조금 다르게 만들었다.
7일이라는 긴 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시작할 때는 끝없이 길게 느껴지지만 지나고 나면 한 줄기 바람처럼 스쳐간다.
아마 오늘 이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의 끝이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나에겐 연휴의 유무보다 ‘하루를 견뎌냈다’는 사실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돌이켜보면, 나는 올해 시간을 두려움과 함께 배워왔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날들이 결국엔 모두 나를 찾아왔다. 진단의 순간, 입원과 치료의 시작, 항암과 방사선의 고통, 그리고 회복의 과정까지 그 모든 시간이 처음엔 너무 멀리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지나버린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 나는 고통의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두려움이던 기억은 서서히 추억으로 옮겨가고 아픔은 이제 나를 단단하게 만든 증거로 남았다. 삶의 어떤 순간도 영원히 멈춰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번 병을 통해 배웠다.
다가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결국엔 도착하고 견디지 못할 것 같던 고통도 언젠가는 흩어진다. 시간은 그렇게 잔인하지만 동시에 가장 공평한 선물이다.
오늘 아침의 햇살은 어쩐지 다정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몸과 마음으로 나는 다시 하루를 맞이한다.
이것이 아마도 회복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연휴의 마지막 날, 특별한 일정도 약속도 없는 우리 두 사람은 인근의 산책로를 걸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그친 뒤의 차가운 공기가 남아 있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오랜만에 화창한 하늘 아래,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그 바람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치료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가을 냄새’였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마트에 들렀다.
연휴의 마지막 저녁을 집에서 보내기 위해 그리고 오후 두시 시부터 시작되는 야구 경기를 보며 하루를 보내기 위해 간단히 장을 봤다.
예전 같았으면 맥주와 안주로 채워졌을 응원의 식탁이었겠지만 이제는 다과와 과일, 그리고 음료로 바뀌었다. 거실의 테이블위에 차려진 응원의 식탁은 단촐했지만, 그 안에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응원하는 팀의 승리의 기대를 담은 열기가 남아 있었다.
직관 티켓 예매에 실패한 딸과 막내는 각자의 자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응원을 하기로 했다. 비록 같은 공간에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환호와 열정이 전해지는 듯했다.
TV 화면 너머로 들려오는 함성과 박수 소리를 들으며 나와 아내도 자연스레 그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우리가 응원하던 팀은 결국 1차전을 내주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뒤 막내는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잠시 후부터는 마치 전력분석가라도 된 듯 오늘 경기의 패인을 조목조목 분석하기 시작했다.
내일은 반드시 이길 거라며 각 선수의 컨디션과 타순, 투수 교체 타이밍까지 논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패배의 순간에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청춘의 힘이자 회복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희망은 결과에서 비롯되는 감정이 아니라 결과와 상관없이 내일을 믿어보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막내가 그랬다.
오늘의 패배를 아쉬워하면서도 이미 내일의 승리를 예측하는 그 마음 그 낙관의 태도는 내가 병상에서 배운 것과 닮아 있었다.
처음 진단을 받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던 날에도 나는 수없이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다.
그러나 ‘오늘을 버티면 내일은 조금 나아질 거야.’ 라는 그 믿음 하나가 나를 치료실에서 그리고 긴 회복의 터널 속에서 다시 걸어나오게 했다.
막내가 내일의 경기를 분석하며 “다음에는 꼭 이길 거야”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이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삶을 이겨내는 방식이라는 걸 알았다.
인생의 많은 장면이 그렇듯, 승리와 패배는 언제나 맞닿아 있다. 병의 고통 속에서도 나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희망을 붙잡은 날들이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오늘의 승리를 자축하고 또 누군가는 패배의 아쉬움 속에 밤을 맞이하겠지만 그 감정들 모두 내일이 되면 조금씩 옅어진다.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결국 시간 앞에서는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고 아픔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 자리에 새로 돋아나는 건 다시 살아보려는 의지다. 그래서 패배는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쉼표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이 저녁, 나는 막내의 다짐 속에서 내 투병의 시간을 본다. 패배를 이야기하면서도 내일을 꿈꾸는 그 마음은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는 회복의 언어다.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지고 또 희망을 말하는 일이며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결국 자신만의 승리를 완성해간다.
이 고요한 저녁, 나는 그저 ‘함께 응원할 수 있음’이 주는 작고 단단한 행복을 느꼈다.
그 평범한 시간이야말로 지금의 나에게 가장 확실한 회복의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