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50일차의 기록
어젯밤은 피곤함이 밀려와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불면증이 있었다고 말하기가 무색할 만큼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두 번의 화장실 방문을 제외하고는 오랜만에 꿈을 꾸며 숙면을 취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결과라고 해야 할까. 새벽의 루틴을 지키지 못하고 늦잠을 잤다.
베란다 너머 창가에서 들려오는 낯선 철새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이미 한낮처럼 밝았고,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자책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다시 일상의 리듬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한동안 꺼두었던 휴대폰 알람을 다시 켜며 아침을 시작했다.
늘 그렇듯 간단히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하려 화장실 거울 앞에 섰는데 턱 아래 목 부위가 유독 부어 있었다. 통증은 없었지만 고개를 숙이면 이중턱이 생길 정도였다.
‘살이 찐 걸까?’ 하는 우스운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투병 이후, 몸의 작은 변화 하나에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원인을 찾아보았다. 삼시세끼를 잘 챙겨 먹었고 매운 음식도 피했다. 자극적인 음식은 멀리하며 연휴를 보냈는데도 왜일까.
연휴 동안의 식사를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평소엔 잘 먹지 않던 전, 커피와 빵,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그제 밤이었다.막내와 함께 마지막 연휴를 기념하며 시켜 먹은 치킨. 그 바삭한 유혹 앞에서 대책 없이 손이 갔다.
또한 치맥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선택한 0.00% 무알코올 맥주 두 캔이 더해지니 목이 견디기엔 조금 버거웠을 것이다.
몸은 정직하다. 잠의 패턴이 흐트러지고, 음식의 균형이 깨지면 어김없이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다시 조율하는 일이 회복의 과정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몸을 보며 아직 나는 환자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밀려왔다.
순간 심한 자책과 함께 알 수 없는 우울감이 고요히 스며들었다. 병원을 나와 일상으로 돌아온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건만 이미 예전의 나로 돌아온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끝난 듯, 아무렇지 않은 척 회복이 완성된 사람처럼 살아가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욕심과 무지가 부른 작은 일탈 하나가 내 몸을 다시 흔들어 놓았다. 남들과 똑같이 살아보겠다고 억지로 속도를 맞추려는 마음은 결국 나를 더 멀리 돌아가게 만들 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음속에 묘한 허무감이 일었다. 내가 싸워온 것은 병 그 자체가 아니라 회복조차도 조급하게 만들려는 내 안의 성급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회복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이제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정상인의 삶을 되찾고 싶었던 욕망,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내는 아직 잠든 오전 소파에 앉아 계속 이 자책의 마음을 끌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 나를 깨워주었다.
이내 트레이닝복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상쾌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을 맞으며 오전의 그 부끄러움을 다시 겸손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 회복 중이다라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그 부끄러움이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완벽한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절제와 기다림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과정임을 나는 다시 배운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오늘의 불편함조차 내 몸이 보내는 배움의 신호로 받아들이며 천천히 걸어가야겠다. 그 길의 끝에 비로소 진짜 회복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산책로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어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어제까지 만 해도 고개 숙인 벼들이 바람에 흔들리던 논에서는 추수가 한창이었다.
콤바인의 엔진 소리와 함께 낫대신 기계가 움직이고 있었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새 몇 마리가 남은 이삭을 찾아 맴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누렇게 빛나던 들판은 하루 만에 낯선 회색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벼이삭들이 고개를 숙이며 익어가던 논은 이제 밑둥만 남은 채, 긴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의 한 주기가 끝난 자리였다. 매년 같은 계절, 같은 풍경을 보아왔지만 오늘따라 그 모습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아마도 내 마음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탓일 것이다. 벼의 밑둥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묘한 쓸쓸함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엔 또 다른 시작의 기운도 있었다.
잘라낸 자리에서 다시 새순이 돋듯 사라진 자리에 다음 생이 준비되는 자연의 순리를 나는 알고 있다. 오늘 내 마음이 조금 시렸던 것은 어쩌면 내 몸과 마음도 그 순리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의 형태로 다가온다. 오늘의 논처럼 내 안에서도 또 하나의 계절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우울한 기분으로 시작했던 운동은 의외로 빠른 효과를 보였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의 어둡던 생각들이 밀려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운동이란 결국 몸이 아닌 마음을 먼저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는 걸 오늘 다시 느꼈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앞으로 하루 만보 걷기를 목표로 삼기 위해 새로운 코스를 정해보기로 한 것이다. 연꽃습지를 지나 금호강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은 이미 가을 햇살이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따가울 정도로 부드러운 햇살 아래에서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정해진 습지의 산책로의 짧은 동선 속에서 보지 못했던 세상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고 그 안의 풍경들은 조금도 변한 것 없이 제 빛깔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벽화가 그려진 금강역 인근의 마을에 이르자 연꽃습지에서 보았던 초록빛 감들과 달리 이곳의 감나무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물망을 들고 감을 따고 있는 한 어르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의 회복도 어쩌면 저 익어가는 감처럼 시간이 만들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직 붉지 않더라도, 언젠가 나 또한 내 빛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 믿음 하나로 오늘의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