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52일차의 기록
긴 연휴를 마치고 다시 일상을 찾은 새벽이었다. 몸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한동안 새벽이 되면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책상 앞에 앉는 일이 하나의 의식처럼 이어졌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의식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불과 열흘의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느슨함 속에서 내 몸은 질서의 감각을 잃어버린 듯했다.
몸을 일으켜 베란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폐 속 깊이 밀려들었다. 초가을의 선선함은 온데간데없고 겨울의 전조처럼 매서운 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그 바람이 순간 정신을 깨우는 듯했지만 동시에 다시 이 리듬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기분 탓인지 모를 피로감이 짙게 남아 있었다.
연휴 내내 늦어진 잠자리와 불규칙한 식사, 그리고 하루하루 쌓인 작은 어긋남이 결국 어젯밤의 불면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몸은 언제나 마음보다 솔직하다.
루틴을 잃은 하루의 무질서함이 그대로 몸의 반응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루틴의 중요성을 새삼 절실히 깨닫는 새벽이었다. 비가 예보된 새벽 하늘과 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서재로 들어와 책장에 시선을 두니 문득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생일, 불면에 시달리던 내게 딸이 건넸던 선물,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의 책을 펼치며 그때 느꼈던 감정을 되짚었다.
“잠은 진화의 과정에서도 존속해온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의미에 당시 밑줄을 그었던 문장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문장을 바라보다 ‘진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투병 이후 내가 겪고 있는 모든 변화는 결국 진화를 향한 과정이었다.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그 생각을 정리해 짧은 글로 남기고 블로그 포스팅 예약을 마쳤다.
열흘 만에 다시 출근과 등교를 준비하는 아내와 막내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분주히 움직였다. 현관문을 나서며 서로에게 짧은 인사 속에 일상이 다시 자리를 잡아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오늘 하루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추석 연휴기간동안 짬찜히 시간을 내어 읽던 책의 마지막을 장을 넘겼다.
송길영작가의 신작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도 인간의 온도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오랜 남았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시대예보>라는 제목으로 저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중량문명 속에서 50년을 살아온 나에게 그는 질문을 던진다. “점점 더 가벼워지는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이름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과연 나는 어떤 이름으로 살아왔던가.
무게 있는 책임과 의무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가장, 직장인, 관리자로 불려왔다. 그 이름들은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무게였고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가벼움을 미덕으로 삼는다. 한 번의 클릭으로 이동하고 한 줄의 글로 감정을 나누며 관계마저 ‘연결’이라는 이름으로 간소화되어 간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경량’은 단순히 가벼움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욕망과 과시, 타인의 시선을 향한 허세를 덜어내는 일.
무거움의 시대가 가진 것으로 자신을 증명했다면, 가벼움의 시대는 비운 것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역설이 그 안에 있었다.
투병 이후의 내 삶 역시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병은 내게 많은 것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일의 무게, 명함의 무게, 관계의 무게.
그러나 그것들을 덜어낸 자리에 남은 건 놀랍게도 가벼워진 나였다. 더 이상 불필요한 욕심이나 불안으로 흔들리지 않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나는 어쩌면 나는 이미 저자가 말하는 ‘경량문명’ 속으로 조금 먼저 들어와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기준으로 무겁게 쌓아 올린 이름이 아니라 나 답게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이름으로 말이다. 그것이 단순히 생존자나 환자가 아니라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이길 바란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온도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처럼 나는 나의 온도를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살아가고 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바람 속에는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와 리듬이 함께 스며 있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블로그에 올리기 위한 서평을 작성했다. 요즘 내게 이 시간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읽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마음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밑줄을 긋고 페이지마다 작은 플래그를 붙이며 멈춰 섰던 순간들이 하나의 기억처럼 남아 있다.
그중 유난히 마음에 닿았던 문장을 다시 찾아 사진으로 남기고 그 의미를 글로 옮기며 되새기는 과정이 나만의 정리이자 치유의 시간이다.
문장을 옮기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본다. 왜 그 구절에 마음이 머물렀는지, 그 문장이 지금의 내게 어떤 메시지를 던졌는지를 묻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책 소개일 뿐이겠지만 내게는 하나의 기록이고, 또 하나의 회복이다. 병을 겪으며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집중력과 몰입의 감각이 다시 깨어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평을 쓰는 동안 나는 잠시 아픈 사람도 치료 중인 사람도 아니다. 오롯이 한 명의 독자로서 그리고 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단 한 명이라도 내가 읽고 올린 책의 문장 속에서 위로나 용기를 얻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될 수 있다면 이 글을 쓰는 나의 오늘 또한 의미로 가득한 하루가 된다.
책을 읽고 느낌을 쓰고 누군가와 함께 나누기 위한 준비를 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내가 다시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