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56일차의 기록
“수면과 꿈의 과학”이라는 주제로 보낸 새벽은 내게 잠의 의미를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다. 많은 애독가들이 왜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붉은 밑줄이 그어진 문장들만 다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때는 지나쳤던 의미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 문장들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마치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건강하던 시절의 내가 했던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오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마음에 남은 단어는 ‘전환’이었다. 전환은 단순히 방향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오래된 습관과 생각의 틀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다.
오늘만 출근하면 주말이라며 즐거운 기분에 집을 나서는 아내를 웃는 얼굴로 보내고 책상에 앉아 오랜만에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예전 직장생활을 할 때,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던 일은 이메일 확인이었다.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어 메일함을 거의 열어보지 않는다.
오늘은 무심코 로그인해 확인 버튼을 누르자 역시나 수십 개의 광고성 메일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낯익은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축하합니다!’라는 문구는 늘 스팸메일의 서두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다 잠시 멈췄고, 안의 문장을 읽고서야 이 메일이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브런치 스토리 크리에이터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순간 머릿속이 잠시 멈췄다. 작년 12월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후 어느새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병원 침대 위에서 그리고 퇴원 후 회복의 시간을 보내며 글을 써왔다. 꾸준히, 조용히, 그저 하루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글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글들이 누군가의 눈에 닿아 ‘창작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니 조금 얼떨떨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선정 기준을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문성, 영향력, 활동성, 공신력을 두루 갖춘 창작자.” 그 문장을 읽으며 피식 웃음이 났다.
내 글이 깊이 있긴 한가, 영향력이 있긴 한가, 스스로 되묻게 되었다. 독자 수는 253명. 많다면 말하면 부끄럽고, 적다면 정말 적은 숫자다.
댓글도 자주 달지 못했고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내 글을 알린 적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활동성’이라는 단어만큼은 자신 있게 인정할 수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프고 지친 날에도 나는 내 이야기를 써왔다. 그 꾸준함이 결국 나를 이 자리로 데려다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문성’이나 ‘공신력’이라는 단어 앞에선 여전히 쑥스럽지만 그래도 이 작은 메달 같은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나를 웃게 했다.
혜택이라곤 닉네임 아내 붙은 초록색 ‘S’ 표시 하나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문장뿐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는 이 1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나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확인을 좀 더 해보니 누군가는 열흘 만에 누군가는 한 달 만에 받은 결과를 나는 1년 만에 받은 것에 마음의 상처를 조금 받기는 했지만, 오히려 늦은 축하이기에 더 내게는 값지다.
아내의 병상을 기록하기 시작된 나의 일기들이 결국 내 삶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 전환의 길 위에서 여전히 글을 쓴다.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나답게.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은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노력한다고 꼭 되는 건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내가 평생을 가지고 갈 또 하나의 문장과 결을 같이 한다.
오늘은 오후 내내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흩어져 있었고, 바람이 제법 세게 불었다. 선선한 공기에 이끌려 바람막이 점퍼를 걸치고 운동화를 신었다. 걷기 좋은 날씨였다.
그렇게 오늘도 천천히 만보를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은 뒤 어제 마지막 장을 덮었던 물리학 책의 서평을 정리했다.
다시 읽어보아도 어려운 문장들이 많았다. 정말 쉽지 않은 과학책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문장들 속에서 ‘과학’이란 단어가 가진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과학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양자역학의 시작은 하나의 가설에서 비롯되었다. 가설이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그러나 믿고 싶은 상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만든 가장 인간적인 언어이기도 하다. 결국 과학의 본질은 모름에서 비롯된 호기심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추적하려는 인간의 상상력 아닐까.
병 이후의 내 삶도 어쩌면 하나의 가설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매일 조금씩 회복되는 몸의 신호들을 믿으며, ‘나을 것이다’라는 믿음 하나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 믿음 또한 근거 없는 상상이지만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가장 강한 힘이다.
오늘은 과학이 그 중에서도 물리학이라는 난제가 상상력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내 삶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