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57일차의 기록
아내는 내일 있을 시합을 앞두고 연습을 충분히 해두어야 한다며 오전에 볼링장으로 향했다. 비가 와서 데려다 주려 했지만 아내는 괜찮다며 지하철로 가겠다고 웃으며 현관을 나섰다.
그 웃음 뒤로 닫히는 문소리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운동을 나가려던 나는 비로 인해 계획을 바꾸고 실내 자전거에 올랐다.
페달을 밟으며 채널을 돌리던 중, 우연히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경기가 눈에 들어왔다. LA 다저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경기. 어제 이미 끝난 경기였지만 결과를 모른 채 보는 야구는 여전히 흥미로웠다.
특히 오늘 경기를 끝까지 보게 만든 건 선발투수 오타니 쇼헤이 때문이었다. 이도류, 야구의 신, 철저한 자기관리, 그리고 꿈을 현실로 만든 선수 등,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10년 7억 달러의 연봉보다 오히려 그가 보여주는 성실함의 언어가 더 놀랍다. 그의 계획표, 훈련 루틴속에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단단함이 숨어 있다.
경기가 시작되고 1회, 오타니는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곧바로 타석에 들어서 선제 홈런을 쳤다. 순간, 자전거 페달을 밟던 내 다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는 이후에도 6회까지 10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타석에서는 세 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말 그대로 오늘 경기는 “오타니의, 오타니에 의한, 오타니를 위한 경기”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설자의 마지막 멘트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삼진 10개를 잡는 투수는 있을 겁니다. 홈런 세 개를 치는 타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 선수가 그 둘을 동시에 해내는 모습은 아마 평생 다시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비록 생방송은 아니었지만 결과를 모른 채 본 나는 그 순간을 함께 살아낸 기분이었다. 오타니 쇼헤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야구선수’ 이상의 상징으로 남는다. 그는 언제나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선수다.
늘 성실하고, 인터뷰에서도 남을 비난하거나 핑계를 대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그의 성실함은 단순한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매일을 ‘루틴’으로 살아가는 습관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그는 이미 ‘만다라트 계획표’라는 자기개발표를 직접 그려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그 계획표의 중심에는 ‘8구단 드래프트 1순위’라는 단어가 있었고, 그 주위를 8개의 목표와 64개의 세부 실천항목으로 채웠다. 스피드 향상, 멘탈 강화, 인간성, 운을 끌어들이는 행동 같은 문항들이 그 안에 있었다.
그 항목들 가운데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는 성공을 위해 작은 운까지도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후 그는 평상시 또는 야구장에서 길을 걷다가 떨어진 휴지나 쓰레기를 보면 직접 줍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만다라트 계획표에 작은 실천 계획도 잊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일화를 든는 것만으로도 그는 단지 천재가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론은 그의 놀라운 재능을 이야기하지만 진짜 감동은 보이지 않는 꾸준함에 있다.
그는 매일 새벽 일어나 식단을 점검하고, 훈련 전후의 스트레칭 루틴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는다. 심지어 경기 전날에는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하며 몸 상태를 조절한다고 한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일조차 야구의 연장선이라 믿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실수조차도 배움의 과정이 된다. 그를 보면 재능보다 꾸준함이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이 나에게도 겹쳐진다. 치료의 끝자락에서 시작된 회복의 길 역시,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는 루틴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오늘 오타니의 경기를 보며 단순히 야구의 짜릿함만이 아니라 인간 오타니의 진심을 보았다.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쌓아 올리며 결국 세계의 정점에 선 사람.
그는 타고난 천재라기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한 번도 도망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웃음 속엔 끝까지 해냈다는 자부심이 아니라 오늘도 할 수 있었다는 감사가 담겨 있었다.
결국 팀이 승리를 하고 경기의 MVP가 된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것이 크든 작든 매일의 반복 속에서 진심을 다하면 된다는 것을.
비 오는 오후, 페달을 밟으며 본 오타니 쇼헤이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중계가 아니었다. 그의 매 순간이 루틴의 집합이자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치열한 싸움이었다.
그가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준 집중과 꾸준함은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삶에는 각자의 경기장이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싸운다. 누군가는 공을 던지고, 누군가는 그 공을 받아내며, 또 누군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시간을 버텨낸다.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오타니의 경기 속에서 다시 배웠다.
오늘 나는 비 내리는 창가에서, 그리고 자전거 위에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회복이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매일 같은 루틴을 지켜내는 꾸준함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믿음이라는 것.
그 믿음이야말로 내 삶을 다시 세우는 가장 확실한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비가 내리던 오늘,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는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나 에게도 나만의 ‘루틴의 경기장’이 있고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내 몸과 마음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