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60일차의 기록
지난 7월 1일, 삼성병원에서의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성남의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6주 동안 6회의 항암과 30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치료가 끝난 뒤에도 면역 관리를 위해 일주일을 더 요양병원에서 보냈다.
8월 21일, 그렇게 길고도 짧았던 병원 생활을 마치고 대구행 KTX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오늘은 집으로 돌아온 지 꼭 두 달이 되는 날이다.
아직 완치라는 단어를 말하기엔 조심스럽고 몸 또한 예전의 나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문득 퇴원하던 그날의 나를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입원 전, 의사가 “치료 중 급격한 체중감소가 예상되니 살을 좀 찌워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순순히 응해 74kg까지 체중을 늘려 입원했지만 퇴원 당시 체중계의 숫자는 차갑게 60kg을 가리켰다. 고등학교 이후 처음 보는 숫자였다.
당시 거울 속의 나는 생소했다. 목은 방사선 치료의 흔적으로 거북이 등껍질처럼 벗겨져 있었고 뒤통수의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빠져 모자를 쓰지 않으면 외출조차 꺼려졌다.
목 안의 염증은 극심했고 물 한 모금조차 통증으로 인해 삼키기 어려웠다. 미각은 완전히 사라져, 모든 음식이 마치 고무나 플라스틱을 씹는 듯한 감각이었다.
밤이 되면 입안이 바짝 말라 잠을 이루기 어려웠고 극심한 변비로 화장실에서 한참을 버티는 날이 이어졌다.
요양병원에 더 머물까 고민도 했지만, 치료가 끝난 이상 더 이상 특별히 받을 치료도 없었다. 영양제 주사와 식사 관리 외에는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아내와 딸은 차라리 집에서 안정하는 게 낫겠다며 조용히 권했고 나도 결국 그 선택을 따랐다.
당시엔 치료가 끝나면 몸도 곧 좋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금세 무너졌다. 방사선 치료의 진짜 고비는 치료가 끝난 이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난 뼈저리게 알았다.
그로부터 두 달. 도저히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던 몸의 증상들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이전의 나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매운 음식은 여전히 금기지만 밥맛은 돌아왔다.
밤의 건조함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이젠 불면의 밤을 매일 보내지 않아도 된다. 목 안의 염증은 거의 사라졌고 체중은 68kg으로 회복되었다.
무엇보다 잃어버린 미각이 되살아나고 듬성하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는 걸 거울 속에서 확인할 때마다 묘한 뿌듯함이 밀려온다.
병은 내 몸을 약하게 만들었지만 회복의 과정은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직은 절반쯤 회복된 몸이지만 그 속에서 나는 다시 걷고, 다시 먹고, 다시 웃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완치의 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그것이면 지금은 충분하다.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기적이 아니라, 이렇게 조금씩 되돌아오는 ‘느린 선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몸의 회복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체력과 정신의 회복이었다. 치료가 끝난 직후에는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래서 작은 루틴부터 다시 세우기로 했다. 실내자전거를 타며 약 2주간 운동을 지속하니 숨이 덜 차고 다리에 조금씩 힘이 붙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기억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집 안에 머무는 것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몸의 회복은 숫자로 측정되지만 마음의 회복은 바깥의 바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도 그 루틴을 지키기 위해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지금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연꽃습지를 지나 금호강 산책로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던 중, 문득 철제 난간에 피어난 작은 나팔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는 분명 없었던 꽃이었다.
비록 흔한 꽃이지만 그 자리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보라색 꽃잎이 찬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런데 사진을 찍던 중 신기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꽃을 피운 줄기가 난간에 단단히 감겨 있었는데 그 시작점이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30cm는 떨어져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자란 연약한 줄기가 어떻게 다른 식물의 도움도 없이 그 거리를 건너와 난간을 감쌀 수 있었을까.
직경 1mm도 되지 않는 줄기가 바람을 견디며 방향을 찾아 나아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떨어질 듯 흔들리면서도,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철제 난간을 붙잡고 올라와 마침내 꽃을 피운 것이다.
나는 그 광경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나팔꽃의 줄기가 걸어온 길을 떠올리니 마치 내 지난 두 달의 시간과 겹쳐 보였다.
넘어질 듯 흔들리고 아무도 모르게 고통을 버텨내며 결국 자신이 설 자리를 찾아 피어난 그 꽃처럼. 몸이 회복되는 과정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매일의 루틴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그 꽃이 가르쳐준 듯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직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나 역시 조금씩 피어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늘의 나팔꽃은 그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나의 회복을 비춰주는 한 송이의 거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저 줄기처럼 가보자.
조금 느려도, 바람이 불어도, 언젠가는 단단한 기둥을 잡고 나만의 꽃이 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