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59일차의 기록
밤새 불어온 찬 바람이 새벽 공기를 차갑게 식혀놓았다. 창문을 열자 손끝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었다.
계절의 속도가 이렇게나 빠르다니, 아직 가을을 다 누리지도 못했는데 벌써 초겨울이 된 듯했다. 잠시 꽃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책상에 앉았다.
오늘 새벽의 다시 읽는 독서는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이었다. 생각을 글로 옮기기 전에 오늘은 책 제목 속 단어인 ‘불변’에 대해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변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결국 우리를 더 아프게 만든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진짜 불변의 법칙일지도 모르겠다.
짧은 독서를 마치고 차가운 날씨였지만 만보 걷기 루틴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외출 준비 전에 세탁기를 먼저 돌려놓고 옷을 챙기다 서랍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두 켤레뿐인 운동용 양말이 서로 다른 색상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흰색 양말 한 짝, 회색 양말 한 짝. 아무리 찾아도 짝이 맞는 쌍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고 있는 세탁기 문을 열어보니, 물속에서 다른 한 짝씩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맴돌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제 이미 서로 다른 양말을 신고 운동을 했던 것이다.
세탁기에 들어 있던 건 분명 어제 내가 벗어 넣은 양말이었는데 그렇다면 어제부터 짝이 다른 양말을 신고 운동을 했다는 얘기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로고가 비슷하다고 해도 엄연히 다른 양말인데, 어제 하루 종일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니.
결국 오늘도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세탁이 끝나길 기다릴 수도 없고 발목이 시려 짧은 양말을 신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내 양말에 신경이나 쓰겠어.”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다시 운동화를 신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막상 길에 나서니 사람들이 내 발목만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아무도 내 양말을 보지 않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할수록 정작 불편해지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10,000보를 목표로 걸었다. 처음에는 찬 공기가 몸을 움츠러들게 했지만, 산책로에 들어서자 햇살이 부드럽게 등을 감싸며 걷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예전엔 휴대폰으로 걸음 수를 세었지만, 이젠 추석 때 아이들이 선물해준 스마트워치 덕분에 훨씬 편해졌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걷는 자유는 생각보다 큰 해방감이었다.
차가운 날씨에 잰 걸음으로 1시간 30분쯤 지나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거리는 8km를 넘어섰는데 걸음 수는 9,000보 남짓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만보가 넘었을 텐데 워치가 중간에 인식을 못 한 듯했다.
그냥 들어가려다 결국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파트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부족한 걸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몇 바퀴를 도는 동안 101동 주차장에서 봤던 택배 기사님을 102동에서도, 또 104동에서도 마주쳤다.
혼자 시계를 보며 아파트 단지를 맴도는 내 모습을 보고 기사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주변에 산책로가 많은데 굳이 아파트를 돌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열 바퀴쯤 돌았을 때 워치에서 10,000보를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택배 기사님과 경비원분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얼른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가방에서 꺼낸 휴대폰을 확인하니, 앱에는 13,600보가 찍혀 있었다. 순간 황당하고 웃음이 나왔다.
시계와 휴대폰이 서로 다른 세상의 기준으로 내 하루를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한쪽은 내가 게으르다고 다른 쪽은 내가 너무 부지런하다고 말하는 꼴이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그 중간쯤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맞든 상관없다.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고도 숫자가 제멋대로인 기계와도 잘 지낸 오늘이었다. 양말은 색이 달라도 따뜻했고 걸음수는 틀려도 내 두 다리가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인생이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완벽하게 짝을 맞추려 애쓰다가 정작 걸음을 멈추는 것보다, 약간의 엇박자 속에서 웃으며 걸어가는 게 더 현명한 일이라는 걸.
돌이켜보면 오늘의 나는 참 이상했다. 양말을 보며 혼자 납득이 안 된다며 중얼거리고 아파트를 빙빙 돌며 만보를 채운다고 진지하게 시계를 쳐다보고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순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엉뚱한 하루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그리고 내 걸음의 속도는 언제나 나만의 리듬으로 충분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오늘 하루는 그렇게 가벼운 실수와 엇박자 속에서, 내가 다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고마운 하루였다.
어쩌면 이게 진짜 회복의 법칙일지도 모른다. 삶이 조금 틀어져도, 웃을 수 있다면 이미 충분히 잘 걷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