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하루를 버티지 않고
보내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65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잠시 물러갔던 강한 바람이 새벽 창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한동안 잊고 있던 겨울의 초입 같은 찬 기운에 이불 속 온기가 순식간에 밀려나갔다.


춥다는 예보를 듣긴 했지만 막상 마주한 새벽 공기는 예보보다 훨씬 더 냉정했다. 창가에 서서 어둠이 남아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듯 서 있었다.

cat-5383045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 베이

명상이라 부를 만큼 집중하지도 멍하다고 말할 만큼 텅 비지도 않은 그 중간쯤의 시간이었고 서재로 향해 책을 펼쳤다.


이번 주의 동행은 <AI사피엔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인간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 그리고 그것을 슬기롭게 다루기 위한 지침서 같은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며 지난 나의 독서의 흔적 속에서 오늘은 ‘도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한때 나에게 도전은 ‘유튜브’였다. 글을 쓰며 읽은 책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소개하던 시절이 있었다.


삼국지와 손자병법의 한 구절을 짧게 요약해 만든 영상에 ‘좋아요’가 눌릴 때면 그 작은 표시 하나가 얼마나 큰 용기를 주던지.


어설픈 편집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밤늦게까지 ‘vrew’ 프로그램으로 자막을 맞추던 시간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퇴사 후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균형이 무너졌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았고 기록해야 할 문장이 쏟아졌다. 결국 유튜브는 잠시 멈췄다.


그때는 아쉬웠지만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이었다. 나의 도전은 세상의 구독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수양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익이 아닌 마음의 이익을 쌓는 중이다. 꾸준히 읽고, 기록하고, 사유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도전이자 회복이다.


투병이라는 현실 속에서도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나누는 일 그 자체가 나에게는 다시 삶을 증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youtube-3873587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 베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도전이지만

멈추지 않는 한 그것은 계속된다.

언젠가 독서의 루틴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다시 영상을 켤 것이다.


이전처럼 단순한 리뷰가 아니라 병을 이겨내며 배운 시간의 무게와 생각을 담은 이야기로 말이다. 그때의 ‘좋아요’는 숫자가 아니라 나의 생을 향한 또 하나의 응원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오늘 새벽, 유난히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나의 도전은 느닷없이 찾아온 불청객으로 인해 잠시 멈췄을 뿐이라고.


어두운 새벽이 지나고 밝은 아침이 찾아왔지만 창밖의 세상은 더 차가워 보였다. 햇살은 있었지만,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냉기가 감도는 현관문을 열고 두 사람이 출근한 뒤 나는 지난 주말의 흔적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거실 한쪽에 포개져 있던 네 개의 침낭. 그 안에는 주말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차가운 바닥으로부터 우리의 체온을 지켜주었던 침낭들을 세탁기에 넣는 동안 문득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건조기가 없던 시절, 캠핑에서 돌아오면 베란다와 방바닥에 침낭을 널어두고 며칠을 말리던 그때. 그렇게 한참을 말리고 다시 주말이면 차에 싣고 나갔었다.

people-4817872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 베이

그 시절, 우리는 정말 캠핑에 미쳐 있었다. 작은 텐트 하나에도 행복했고 불편함마저 즐거움으로 감쌌던 두 사람이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운동복을 챙겨 입었다. 한 주를 건너뛴 몸을 다시 깨워야 했다.


문을 나서는 순간, 찬 바람이 얼굴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이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나를 되찾는 길이라 믿었다.


예정된 코스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 그러나 금호강변에 다다르자 바람이 거의 태풍처럼 몰아쳤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결국 방향을 틀어 도심 쪽으로 길을 바꾸었다.


수많은 상가 건물들 사이로 들어서자 신기하게도 바람이 잦아들었다. 유리창 사이로 비치는 햇빛과 자동차의 소음, 평소라면 답답하다고 투덜거렸을 거리 풍경이 오늘은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삭막하다고만 생각했던 도시의 빌딩이, 오늘은 내 몸을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벽이 되어 있었다.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미소가 번졌다.

man-2179243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 베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걸 다시 배운 하루였다.

예전엔 바람을 피해 산과 들로 향했지만

지금의 나는 도심 한복판에서도

감사할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고 돌아오는 길, 세탁기의 알림음이 울렸다. 창문 너머로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마음 한켠은 묘하게 따뜻했다.


예전에는 불편함만 보였던 것들 속에서 이제는 작은 안도를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회복의 또 다른 증거일지도 모른다.


목표한 걸음수를 채우고 집에 돌아오니 생각보다 몸이 무거웠다.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으려는 순간 이번 주 목요일, 아내와 함께 종합검진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 기억났다.


오전에 오늘부터 음식 조절을 시작해야 한다는 병원의 안내전화를 받았다. 점심을 차리며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이미 돌아오지 않은 미각과 여전한 목의 통증으로 인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극히 제한적인데 거기에 검진을 위한 식이 조절까지 더해지니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물론 더 건강함을 확인하기 위해 며칠 음식을 조절하는 것일 뿐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 먹는 일은 또 다른 치료의 연장선이자 인내의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최소의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책상에 앉았다. 다행히 서재는 올 들어 처음 가동한 보일러의 온기로 따뜻했다. 손끝이 닿는 책상마저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새 책을 펼쳐 들었다. 이번 주 도전할 책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편에 속하는 이 책을 주문하는 순간 마치 작은 도전의 마음이었다.


213년전에 쓰여진 글 속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속도보다 작가와 공감을 나누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묘한 긴장감과 설렘을 동시에 주었다. 예전 같으면 빠르게 읽어내려갔겠지만, 지금의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한 문장을 천천히 곱씹고 단어 하나에도 머물며 문학의 리듬에 나를 맞춘다. 그렇게 오후의 대부분을 책과 함께 보냈다.


퇴근한 아내와의 저녁은 역시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정해졌다. 집에 있는 쌀은 이미 잡곡과 섞여 있었기에 내시경을 앞둔 식단으로는 어려웠다.


결국 햇반을 데워 밀키트 소고기무국으로 간단히 식탁을 차렸다. 제법 퍼지는 소고기와 무의 향이 나쁘지 않았다. 추운 겨울,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은 단촐하지만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지난 주말 장거리 운전과 캠핑의 피로가 밀려왔는지 아내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침실로 향했다.


주말 내내 분주했던 탓일까, 늦잠으로도 채워지지 못한 피곤이 그대로 쌓여 있었던 듯했다. 초저녁의 조용한 방 안,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운 아내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good-1122969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 베이


예전의 나는 하루를 ‘버텼다’고 표현했다. 버틴 하루는 늘 싸움의 흔적이 남았고 끝내면 고단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 말을 조금 바꿔 ‘보냈다’고 말한다.


하루를 ‘보낸다’는 건 버티는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그 안에 여유가 담겨 있다. 버틴 하루의 끝은 안도의 한숨으로 끝나지만 보낸 하루의 끝은 내일의 희망을 품고 있다.


아마 그것이 회복의 또 다른 증거일 것이다. 더 이상 무언가를 이겨내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하루를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멀리 달리지 않아도 좋다.


지금의 나는 그저 오늘을 천천히 읽어내는 중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내일을 살아갈 작은 힘을 배운다.





이전 26화10.26.자연이 건네는 작고 평온한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