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66일차의 기록
대구에는 오늘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낮에는 포근하던 공기가 갑자기 얼어붙은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창문을 닫아도 바람은 틈새를 찾아 들어왔고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칠 때마다 계절이 한 발 더 나아갔음을 느꼈다. 이른 겨울의 냄새가 방 안 깊숙이 스며들었다.
오후에도 역시 창밖의 찬 기운은 눈으로 확인될 정도였다. 예전의 몸이라면 이까짓 추위쯤이야 하고 운동복을 입고 현관은 나섰겠지만 지금은 산책을 나서기엔 무리였다.
실내자전거에 몸을 싣고 페달을 천천히 밟는 동안 귓가에 들려오는 소음이 묘하게 리듬처럼 느껴졌다. 바람 대신 페달의 저항이 나를 움직였고 내 몸의 온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운동을 마치고 나니 차가웠던 몸이 데워지며 한결 가벼워졌다. 손상된 침샘을 자극하는데 좋다며 아내가 얼마전에 사온 레몬차를 한잔 만들어 컵을 두 손으로 감싸쥐니 손끝에 닿는 온기가 마음까지 데워주는 듯했다.
오늘은 특별한 약속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날이었다.
책상 위에는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놓여 있었다. 이미 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된 유명한 작품이었지만 난 이 작품을 처음 읽고 있다.
처음에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 속의 오만과 편견이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그 시선 속에는 경험이 녹아 있고 상처가 있고 때로는 두려움이 섞여 있다. 그 모든 것이 편견이 되어 타인을 판단하게 만들고 나 자신조차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이제 중반 즈음 넘어가는 작품속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타인의 말에 의해 다아시를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부분은 안타까움이 들 정도였다.
편견은 늘 조용히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이기도 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가두는 벽이 되기도 한다.
전부를 읽지는 못했지만 오후까지 읽은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오만은 타인에게서 드러나고 편견은 사실 남이 아닌 자신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아니 25년이란 직장 생활의 내모습을 잠시 뒤돌아보았다. 조금 더 많이 안다고, 나이가 조금 더 많다고 난 오만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그 오만에 사로잡혀 새로운 사람들이 나보다 모른다는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이미 그 시간은 지나가 버렸지만 오늘 이 책을 통해 나는 지금 그 숨어 있는 편견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200년도 넘은 고전에게서 나는 오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한파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한권의 책이 가슴을 데웠다.
창밖에서 비추는 바깥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마음은 조금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