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5년의 기다림 끝에 함께한
아들과의 저녁시간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78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어제 오후, 신뢰로 이어진 인연과의 따뜻한 만남을 뒤로하고, 저녁에는 피로 맺어진 인연을 찾아 포항으로 향했다.


올해 초 백령도 근무를 마치고 포항으로 발령 난 아들은 지금 군인 관사에서 생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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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괜찮다고, 불편한 것 없다고 말하지만 그 말 속에 스며 있는 불편함을 이해 할 수 있다.


관사는 편의보다 제약이 많을 것이다. 개인 공간은 사치에 가깝고, 퇴근 후에도 늘 타인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이다.


며칠 전 통화에서 아들은 조심스럽게 “요즘은 대부분 원룸으로 나가서 살아요...”라고 말했다. 그 짧은 한마디에 아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이번 주말, 아내와 함께 아들의 집을 알아봐 주기 위해 포항으로 여행을 겸사 겸사 선택했다.


울산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산등성이마다 붉고 노란 단풍이 차곡차곡 물들어 있었고, 창문을 살짝 열자 차가울 듯 말 듯한 바람이 차 안을 부드럽게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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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 앞에서 픽업을 한 뒤 포항 시내에 들어서자 곳곳에 ‘임대문의’라는 문구가 붙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엔 군인숫자도 줄고, 경기도 안 좋아서 빈방이 너무 많아서 좀 썰렁해요.”


군인들의 수요를 기대하고 세운 빌라들이었지만, 수요자가 없어 거리가 한산할 정도라는 중개사의 한숨 섞인 말 속에는 지역의 경제 사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우린 짧은 시간 약 10곳의 방을 둘러보았다. 구조를 꼼꼼히 살펴보고 주거 여건과 방음 상태와 난방 시설등을 확인했다.


창이 넓고 햇살이 좋은 투 룸 두 곳으로 선택의 폭을 좁혀주었다. 아들에게 선택을 맡겨 두었다. 몇 일만 좀 더 고민해보고 최종 결정은 다음 주에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대구로 돌아가지 않고 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인근 모텔에서 숙박을 한 뒤 내일 아침까지 함께 먹는 일정으로 계획을 잡았다.


집을 보고 숙소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저녁 먹기 전 시간을 보낼 곳을 찾다가 인근의 당구장을 발견했다.


최근 당구에 부쩍 관심이 많은 아내는 눈을 번뜩이며 아들에게 의사를 물었고 우리는 당구장으로 향했다.


술도 잘 못 마시고 군에서 업무하기 바쁠 것이라고 예상했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아들은 제법 당구를 잘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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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웃으며 백령도에서 당구장이 있느냐고 물으며, 섬에서 당구만 치다 온 것이 아니냐며 웃으며 아들에게 따져 물었다.


승부와는 의미 없는 게임에서 아내와 아들은 진지했다. 그리고 결국 경기가 끝나고 최종 카운터로 향한 것은 아내였다.


당구장을 나서니 밤하늘이 조금씩 젖어 있었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빗방울이 서서히 굵어졌다.


우산이 없던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인근의 ‘뒷고기집’ 간판 불빛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엇을 먹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의 진짜 의미는 ‘포항’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아들의 근무지 근처, 같은 식탁에 둘러앉았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 안은 생각보다 사람들로 붐볐다. 조용한 빌라촌을 돌아다니며 공실이 많다는 말을 들은 터라 순간, ‘정말 경기가 나쁜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들에게 묻자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군인들은 거의 여기 안 와요. 다 주변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 말에 식당 안을 둘러보니, 정말 그랬다. 군복 대신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불판 위에서는 뒷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그 소리가 묘하게 마음을 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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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집으며

“이런 자리,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하고 조용히 말하며 가장 잘 익은 고기 한점을 잘라 제일 먼저 아들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군생활을 시작한지 5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이렇게 아들의 근무지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사병에서 바로 부사관으로 전향한 뒤 김포를 거쳐 백령도에서 근무하던 시절, 여러 번 찾아가려 했지만 매번 거센 바람과 파도에 막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때마다 ‘다음엔 꼭 가야지’ 하면서도 결국 한 번도 그 섬을 밟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의 식사는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그 5년의 기다림이 식사자리였다.


아들은 담백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그리고 웃으며,

“이제는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보다 훨씬 낫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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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속에는 스스로의 자리에서 묵묵히 버텨온 세월이 담겨 있었다.


식당의 창밖으로 빗방울이 창가를 두드리며 식당의 소음을 덮었고, 그 소리 속에서 묘한 평화가 느껴졌다.


병실의 소음도, 치료의 고통도 없는 이 순간,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새삼 느껴졌다.


오늘의 저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남편으로서의 고마움을, 그리고 살아 있음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식당을 나설 때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그 빗속의 공기에는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다.


아들은 택시를 타고 관사로 돌아가고, 아내와 난 숙소를 향해 떨어지는 빗속을 조금은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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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하는 이날 밤은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선물 같았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일요일 아침 우린 아들과 함께 아침을 먹으려 했지만, 어제 헤어진 뒤 부대에 급한 일이 생겨 아침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아내와 둘이 인근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우린 대구로 출발했다.


짧았지만 참 오래 기억될 주말이었다. 신뢰로 이어진 인연과의 만남으로 시작해, 아들과 함께한 포항의 밤으로 이어진 시간까지.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하나의 위로이자 선물이었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옆 산등성이에 남아 있는 단풍들이 여전히 깊은 붉은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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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삶의 온도는 이렇게, 조금의 아쉬움과 잔잔한 행복이 섞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한 이 주말이 내게는 또 하나의 회복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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