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79일차의 기록
겨울이 찾아온다는 신호는 차가워진 바람과 떨어진 기온만이 아니라 짧아진 해의 길이로도 느낄 수 있는 아침이었다.
평소보다 한시간이나 늦은 시간임에도 창밖의 하늘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다시 추워진 날씨에 짧은 명상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희망’이라는 단어에 대한 글을 적었다.
오전 독서를 마치고 창밖을 날씨를 확인해보았다. 하늘은 맑았지만 제법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충분히 금호강 산책로의 바람을 예상 할 수 있었다.
결국 자전거 페달을 밝으며 땀을 배출해냈다. 운동을 마치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옷을 갈아입고 차량 정비를 위해 다시 현관을 나섰다.
주말 울산과 포항을 다녀오는 길, 계기판에 정비 시기가 다가왔다는 알림 문구가 떴다. 확인해보니 이 차를 구입한 지 벌써 1년이 되어 있었다.
작년 11월, 퇴사를 결심하던 시기에 기존에 타던 차를 처분했다. 그 차는 내 인생의 작은 버킷리스트이자, 한때는 나 스스로 성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안정적인 월급이 있을 때만 유지할 수 있는 사치였다.
직장을 떠나며 나는 처음으로
지속 가능한 삶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금의 중고차였다. 화려하지 않지만, 현실 속에서 나의 발이 되어준 고마운 차가 되고 있다. 그렇게 마음 한켠의 아쉬움을 묻어두고 맞이한 지 어느덧 1년.
시간의 흐름은 참 빠르다. 병원과 집, 서재와 운동 사이를 오가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계절은 네 번이나 바뀌어 있었다.
엔진오일을 교체 후 점원은 앞 타이어 두 개가 한계선에 거의 다다랐다며 안전을 위해서는 교체를 하고 탈 것을 권유했다.
아마 예전 같으면 타이어를 팔기 위해 영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정말 교체시기가 되었다고 해도 당장은 아니라 좀 더 운행을 한 뒤에 교체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점원의 말을 듣고 앞 타이어 두개를 새로 교체했다.
투병이후 생긴 변화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이제나는 사전에 무엇을 해야 한다면 미루지 않는 다는 것이다.
특히 안전 또는 준비라는 말에는 더욱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사람도, 차도, 결국 다르지 않다. 관리를 게을리하면 조금씩 삐걱거리고, 제때 손을 보살피면 오래 버틴다.
정비는 고장이 나서 하는 일이 아니라,
고장이 나지 않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투병의 시간 동안 나는 내 몸의 경고등이 얼마나 오랫동안 켜져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목이 조금 불편했을 때도, 삼키는 게 힘들어질 때도, 그저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며 넘겼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정비보다는 버팀을 택했다. 하지만 버티는 일만으로는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는다는 걸, 병원 침대 위에서 깨달았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내 몸을 다시 점검하는 과정이었고, 동시에 내 마음의 낡은 부품들을 갈아 끼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는 차의 엔진을 완전히 분해해 다시 조립하는 일과 비슷했다.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때로는 멈춰버릴 것 같았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만 다시 시동이 걸렸다.
그 뒤로 나는 매일의 컨디션을 체크하듯, 몸과 마음을 조금 더 세심히 살피는 습관을 들였다.
식사 후의 피로, 잠시 찾아오는 두통, 체중의 미세한 변화조차 이제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이제야 알겠다. 정비는 치료 이후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계속 이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병을 겪으며 나는 내 몸을 믿는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오만이었는지도 깨달았다. 기계처럼 조용히 돌아가던 몸이 한순간 멈추었을 때, 그 안의 소중함을 비로소 깨닫는다.
들어오는 길 세차장에 들렸다. 어두운 터널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돌아가는 브러쉬에 차체의 먼지를 닦아내던 순간, 나는 내 몸의 피로도 그렇게 닦여 나가기를 바랐다.
비누거품이 사라지며 강한 에어로 앞 유리에 있던 맺혀 있던 물방울이 반짝이며 흘러내리는 걸 보며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내 안의 고통도
이렇게 천천히 씻겨 내려가겠지,
그렇게 매만지고 다듬다 보면
다시 반짝일 날이 오겠지.
정비와 세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문을 열자 밀려드는 차가운 가을 바람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바람은 마치 새로 교체한 필터를 통과한 깨끗한 공기처럼 느껴졌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핸들을 잡은 손끝에서 왠지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는 단순히 햇살의 열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에서 오는 것이었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자신을 정비하며 하루를 견디는 일이다. 몸의 피로를 살피고, 마음의 먼지를 닦아내고, 오일을 교체하듯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
그렇게 오늘을 정비하고 나면 내일의 길 위에서도 조금 더 부드럽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차의 엔진이 일정한 리듬으로 돌아가듯, 내 삶도 서서히 제 속도를 찾아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내 삶의 엔진을 천천히 돌리고 있다.
조심스레, 그러나 분명한 속도로 달린다. 비가 오면 와이퍼가 빗물을 닦아주며 길을 보여 줄 것이고, 어두운 터널을 달릴 때는 라이트가 내 앞 길을 밝혀줄 것이다.
그리고 그 터널이 지나도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빛 하나가 있다.
그 불빛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다시 길 위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