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82일차의 기록
수능일 아침. 한파는 예고되어 있지 않았지만 긴장감으로 인해 짧은 명상을 하며 다가온 바람은 그 어느때 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더 긴장이 되는 것을 보면, 수능날이 유독 추운 것은 어쩌면 40만여명의 수험생들과 그 학부모들의 마음에서 불어오는 냉랭한 긴장간 때문일 것이다.
도시락을 준비하며 오늘만큼은 반찬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의 12년의 학창시절은 사실 오늘을 위해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험장으로 향하는 길,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숨을 내쉴 때마다 옅은 입김이 피어올랐다. 막내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단단해 보였다.
나는 일부러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긴장을 풀어주려 했지만, 그 짧은 웃음 뒤로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교문 앞에 도착하자 커다란 현수막을 든 봉사자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후배들이 작은 응원이 메시지를 들고 서 있었다.
다니던 학교에서 시험을 보니 정문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며 파이팅을 외처주는 모습에 더욱 막내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맴도는 듯 보였다.
작은 목소리로 “긴장하지 말고 준비한 만큼만 실수하지 말고 나와”라는 말을 전하고 막내는 웃으며 학교 정문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뒷모습이 교문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그 순간 마음 한 편이 묘하게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큰아이와 둘째 때는 그 입시의 무게를 제대로 함께 나누지 못했다.
첫째가 수능을 치를 때는 중국 발령으로 곁에 없었고, 둘째는 중국에서 막 복귀해 인천 본사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아내가 모든 부담을 홀로 떠안아야 했다.
비단 막내 때문은 아니었지만 회사를 퇴사하게 되면서, 올 해만큼은 반드시 막내 곁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이번만큼은 아내에게 그 무게를 다시 지게 하지 않겠다고, 지난 두 번의 후회를 끝내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암이라는 복병은 그 다짐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막내의 고3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시간을 또다시 아내 혼자 감당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깊게 파고들었다.
내 몸조차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랜 기간 병원에 머물렀고, 그 시간 동안 아내는 혼자 아이의 걱정까지 떠안아 수능을 바라보아야 했다.
나는 늘 아내에게 말해왔다.
첫째 때는 이번에 중국 주재원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안되니, 둘째 때부터는 내가 반드시 신경을 쓸게. 둘째 때는 본사 인정받으려면 인천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미안해, 셋째는 정말 내가 꼭 약속을 지킬 게.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세 아이 모두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한 번도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빠로서도, 남편으로서도 해야 할 몫을 결국 아내에게 떠넘겼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물론 마음 한편에서는 이 모든 병이 가족을 위해 무리하게 일하고 버티며 살아온 결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위안이 될 만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스스로를 속이기 위한 핑계일 뿐이었다.
결국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
그 때를 놓쳐버리면 평생 마음의 아픔으로 남는다는 것.
그 단순한 진리를 나는 이제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내를 생각하면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 밀려온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보다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아내는 늘 그런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그래서 더 고맙고, 그래서 남은 시간만큼은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깊게 일었다.
오후 4시 40분, 다시 수능시험장 앞에 섰다. 아침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선 학부모들이 눈에 띄었다.
오전보다 더 푸석한 표정도 있었고, 안절부절못한 마음을 감추려 괜히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부모도 있었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잠시 뒤, 시험을 마친 아이들이 한 명, 두 명씩 교문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 셔츠 깃을 여미며 걸어오는 막내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심장이 탁 내려앉았다가, 막내 얼굴에 짙게 묻은 안도와 밝은 표정을 확인하자 그제야 숨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도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막내는 인서울이나 수도권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희망하는 학교의 수능 최저를 맞춰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많은 걱정과 긴장을 품고 치른 시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막내 얼굴은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해 나온 하나의 결과처럼 보이기도 했다.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표정은 거의 비슷했다.
해방감, 허탈함, 실망, 아쉬움, 후련함이 뒤섞여 묘한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인생의 갈림길 같은 문제들 앞에 섰던 아이들이었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떨구었고, 어떤 아이는 문제지를 다시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을 것이다. 혹은 부모를 보자마자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얼굴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한 번에 마주한 기분이었다.
불안, 희망, 기대, 실망, 후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끝났다”는 깊은 안도의 숨.
만약 누군가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을 한 장면으로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아마 오늘, 이 오후의 교문 앞 풍경을 보여주면 될 것이다.
오늘은 시험을 마치고 나온 모든 학생들, 그리고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킨 학부모들 모두에게 1년 중 가장 따뜻한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고, 손끝까지 얼어붙었던 감정들이 서서히 녹아내려 누구에게는 작은 위로가 누구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되는 그런 부드러운 따스함이 오늘 하루를 감싸주었으면 한다.
수험생들에게는 스스로를 토닥이는 안도의 시간으로, 부모들에게는 그제야 숨을 조금 고를 수 있는 평온의 시간으로 이 날이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을 교문앞에서 막내를 기다렸고, 터덜 터덜 걸어나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녀석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 속에 고맙고 또 미안하다는 마음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