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84일차의 기록
아침 창문을 살짝 여니 차가운 공기가 손끝에 먼저 닿았다. 바람의 결이 한층 더 얇아진 걸 보니 겨울이 분명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우고 책상에 앉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끝까지 읽었다.
책 속에서 하루키는 달리기를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방식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달리기를 통해 매일 일정한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이 글을 쓰는 삶까지 이어진다고 고백한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이고 하루의 균형이 잡힌다는 그의 말이 낯설지 않았다.
달리기는 기록을 깨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어제의 나를 조용히 넘어서기 위한 사적인 의식과도 같았다.
때로는 달리고 싶은 날보다 달리기 싫은 날이 더 많지만 그런 날일수록 신발을 신고 나가 한 걸음을 내딛는 과정이 자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했다.
결국 달리기는 인내의 훈련이자 평온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그가 오랫동안 글을 쓰고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꾸준한 움직임이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들이쉬었다. 달리기에 대해 그가 말한 문장들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달리기의 가장 좋은 점은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나 자신과의 경쟁.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에게도 묘하게 맞닿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이기는 기쁨보다 과한 승부욕이 만드는 어색함을 더 많이 느끼는 편이다.
누군가를 이기면 이상하게 미안하고, 지면 지는 대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아마도 경쟁이 주는 긴장감보다 그 순간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를 더 좋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루키의 고백이 낯설지 않았다. 달리기는 이기거나 지는 세계가 아니라, 스스로의 리듬을 만드는 세계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만보 걷기를 할 때도, 실내 자전거를 탈 때도, 나는 시계를 잘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을 잊고 움직이게 되는 순간이 많다.
누가 나보다 빠르거나 느린지가 아니라 내 호흡에 맞춰 천천히 이어지는 리듬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맞는 운동은 정말 달리기인지 모르겠다. 몸이 회복되는 지금의 속도와도 잘 맞고 경쟁을 피하고 싶은 내 마음과도 잘 맞는다.
무엇보다 달리기는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이 기준이 되는 운동이다. 천천히 가도 괜찮고 잠시 멈춰도 괜찮다.
목표를 세우기보다
자신만의 템포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한 운동.
문득 치료 과정도 어쩌면 달리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빨리 나을 필요가 없고, 누구처럼 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내 속도로, 내 리듬대로, 조금씩 나아지면 되는 것이다.
내가 걷고 내가 움직이는 만큼만 회복의 속도도 따라온다. 굳이 남의 속도를 의식할 이유가 없다.
오늘 책을 덮고 나서 마음 한쪽에 작은 확신이 생겼다.
지금 하고 있는 걷기와 자전거 역시 나만의 달리기였다는 사실. 그리고 언젠가 몸이 좀 더 회복된다면 진짜로 달려보고 싶다는 새로운 욕심도 생겼다.
지금은 아직 회복의 시간이 더 필요하고 몸의 감각도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언젠가 다시 두 발로 길을 따라 조용히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오늘의 이 작은 다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 같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속도로 누군가와 겨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호흡을 지키기 위해서 달리는 길.
치료의 과정도 그렇듯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나 만의 속도를 유지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그 길 위에 서게 되면, 이 회복의 시간들이 모두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준 발자국이었음을 조용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처럼 조용히 마음을 다져가던 오늘이 내게 또 하나의 시작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