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85일차의 기록
아침부터 몸이 괜히 묵직했다. 추워진 날씨 탓인지 드디어 감기 기운이 찾아왔다. 열도 없고 머리도 아프지 않았지만, 기침이 올라오고 코가 막히기 시작하니 불편함이 하루 종일 따라붙었다.
며칠 전 포항에 다녀온 뒤로 아내도 비슷한 증상으로 고생했기에, 결국 나는 아내가 처방받아 두었던 감기약을 먼저 챙겨 먹었다.
내일은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아볼 생각이다. 항암치료는 끝났지만 면역력은 여전히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려준다.
작년 같으면 이 정도 감기는 하루 푹 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던 작은 고비였다. 운동을 더 세게 해서 땀을 빼면 몸이 스스로 회복력을 찾아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몸이 아니다.
치료의 과정에서 체력은 예상보다 더 깊이 고갈되었고, 면역의 밑바닥이 어디인지도 몇 번이나 확인하며 지나왔다.
그래서 감기처럼 익숙한 증상도 이제는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완치 전의 몸이 작은 감기 하나에도 흔들릴 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심한다는 말이 단순한 당부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매 순간 확인해야 하는 약속처럼 느껴진다.
이전에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버텨내는 것이 ‘강함’이라고 착각했다면 지금은 그 신호를 정확히 듣고 대응하는 것이 내게 남은 힘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 달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치료 이후의 몸은 작은 변화에도 반응이 예민하고 그만큼 회복의 속도도 느리다. 그 느린 속도를 인정하고 억지로 끌어올리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어쩌면 이런 조심스러움은 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고 인생의 중반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변화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넘겨도 됐던 것들이
이제는 내일의 컨디션을 결정하고,
그 하루가 또 다음 날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처럼 감기 기운이 스치기만 해도 조금 더 신중해지고 조금 더 내 몸의 편을 들어주게 된다.
식습관도 예전과 달라졌다. ‘몸에 좋다’는 말만 들어도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내가 이제는 먼저 찾아 마신다.
배도라지즙을 데워 마시고, 도라지생강차를 우려내어 천천히 목을 적신다. 입맛보다는 내 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다.
예전의 나는 맛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먹었다. 젊다는 건 그런 무모함도 감당해낸다는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몸의 균형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선택이 이제는 하루를 흔들고 작은 증상이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어쩌면 이 변화는 감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더 많아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괜찮겠지!’ 하고 넘겼던 일들이
이제는 ‘괜찮을까?’로 바뀌어 망설여진다.
젊음의 속도 대신 느림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가는 것일 것이다. 한때는 이런 변화에 씁쓸하기도 했지만, 이제 이런 변화가 서글프지만은 않다.
몸을 돌본다는 건 결국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고 하루의 균형을 스스로 가꿔 나가는 일이니까.
예전에는 무심히 흘려 보냈던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 목을 부드럽게 감싸는 향, 몸이 편안해지는 감각들이 이제는 마음의 자리를 조금 더 차지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는 욕심을 덜고 몸과 마음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이 된다.
예전의 나를 내려놓는 대신,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쪽으로 천천히 옮겨가는 과정.
어쩌면 그게 더 깊고 단단한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피곤한 몸을 억지로 움직이지 않고 쉬어주는 것도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