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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란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새벽의 공기로 인해 차갑게 식어 있은 서재는 밤새 스며든 겨울의 흔적이 빼곡히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서늘함 속에서 찾아오는 발끝의 따뜻한 온기에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여전히 어둠이 가시기 전의 새벽은 나를 고요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요즘 시간은 내게 행운처럼 느껴지는 몇 안 되는 순간이 되었다.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책갈피에 꽂아 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우리가 행운이라고 이야기하는 우연은 그 행운을 향해 끝까지 집요하게 마지막 문의 손잡이까지 모두 열고 그 속을 향해 걷고 뛰는 순간 필연이 됩니다....


지금바로 눈앞에 행운이 놓여 있습니다.

물론 행운을 움켜쥐는 것과 그냥 지나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입니다”

어나더 레벨 중에서 - 325page

이 문장은 새벽의 고요를 깨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언뜻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한 줄의 문장이 삶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오늘이 그랬다.


행운.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뜻하지 않게 좋은 결과가 찾아오는 것.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일이 전개되는 상태.


사전적 의미만 보면 행운은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결과처럼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이 문장을 무심하게 읽어왔다.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라는 표현을 “의지나 노력이 없이”라는 뜻으로 오해해온 것이다.



이 차이는 아주 작지만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의미다. 노력과 상관없이 들어오는 것과 노력 없이 들어오는 것은 같은 말 같아도 완전히 다르다.


나는 어느 순간 이런 의문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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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얻게 되는 결과란 존재할까.

세상 어디에도 그런 일은 없지 않을까.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 나를 향해 오는 것이 있을까.


오래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가 스스로 행운을 바라보던 방식이 지나치게 수동적이었던 탓이었다.


알고 보면 행운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뜻밖의 순간에 흘러들어오는 부산물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들도 확인해보면 대부분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작은 금액이라도 로또를 사온 사람들이다.


그들 또한 매주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다. 그들의 행운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꾸준함이라는 기초 위에 놓인 결과다.


나는 이 부분에서 오래 멈추게 된다. 그리고 결국 행운은 ‘어떤 일을 하는 나’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행운은 단순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발적 사건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스스로 만든 작은 움직임의 총합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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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게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건네는 기회라는 것은 언제나 ‘움직이는 사람’을 전제로 한다. 걷고 뛰고 두드리는 사람에게만 우연이 필연으로 바뀌는 길이 서서히 열린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다. 예전의 나는 행운을 ‘운에 의한 좋았던 경험’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행운이란 ‘노력에 의한 좋았던 경험’으로 바뀌고 있다. 가만히 서 있을 때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걷기 시작하면 땅의 감촉이 달라지고, 뛰기 시작하면 호흡이 변하고, 문을 두드리면 안쪽에서 울리는 작은 미세한 반응이라도 느껴진다.


그 반응이 바로 나를 앞으로 끌고 가는 힘이 된다.


그리고 그 힘은 언젠가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변해 나타난다.


그때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 운을 부를 만큼 내 삶은 이미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투병 이후 나는 이 사실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병은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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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의지 없이 다가온 사건이었지만

그 안에서 버티고 다시 일어나야 하는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이고 노력이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무너져가던 시기에도 나는 그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내 삶으로 들어왔다. 가족의 온도, 건강에 대한 새로운 감각, 지금 쓰고 있는 글의 루틴까지 모두 뜻하지 않게 얻게 된 것들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은 고통의 부산물인 동시에 삶이 내게 건네준 작고 단단한 행운이었다. 그 행운은 독하게 노력한 결과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너져 있는 와중에도 다시 일어서려 했던 작은 몸짓들이 쌓여 어느 날 내 곁에 조용히 내려앉은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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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누군가의 문 밖에서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문손잡이를 돌리는 나의 의지와 손끝의 온도를 기다리는 존재다.


가끔은 문틈에 기대어 조용히 앉아 있다가도 내가 다시 한 번 손을 뻗는 순간 그제야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행운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머문다.


살다 보면 우리는 노력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흔히 ‘운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행운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열지 않은 문 뒤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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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을 열기 직전에 멈춘 걸음 때문에 만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행운’이란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행운은 멈추지 않는 노력 위에 얹힌 뜻밖의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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