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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새벽의 공기가 몸 안으로 깊게 스며들었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기 전의 가장 고요한 순간이었다. 창문을 아주 조금 열자 찬 기운이 볼을 스치며 정신을 깨웠다.


차 한잔을 데워 놓고 책상 앞에 앉아 이기적 유전자의 책장을 다시 넘기며 나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를 반복해온 유전자의 본능을 떠올렸다.


남은 인생의 후반전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나 자신의 진화 방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기 위해 조용히 책을 펼쳤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라도 이러한 규칙은 다만 통계적 의미에서 ‘올바른’ 결단을 이끌어 낼 뿐이다.


조건이 달라지면,

예를 들어 어떤 종이 훨씬 큰 집단에서 생활하게 되면 그 규칙은 그 종이 동물들에게 잘못된 결단을 내리게 만들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 202page


규칙.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질서나 정해진 방법.

반복되는 자연 현상이나 사물의 원리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법칙


규칙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마땅히 지켜야 하는 질서나 정해진 방법으로 요약되지만 나는 이 의미를 자연현상에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처럼 받아들여 스스로에게 가혹하리만큼 엄격하게 들이대며 살아왔다.


결국 나를 위한 규칙이 나를 해치는 규칙으로 변질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문장에서 말하는 ‘조건이 달라지면’이라는 문구는 유전자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였다.


그러나 나는 이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무시한 채 내 몸과 삶의 조건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정한 규칙을 영원히 지켜야 하는 불변의 기준처럼 여기며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였다.


일과표처럼 하루를 정해두고 그대로 흘러가는 삶을 좋아했다. 그러나 암 진단 이후 더 이상 예전의 규칙들이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빠르게 깨달았다.


하루 종일 계란 두 개와 두유 하나로 버티고 저녁에는 술과 함께 마음껏 먹는다는 억지 위안 속에서 유지해온 1일 1식.


아무리 피곤해도 빠지지 않으려 했던 운동, 절식과 간헐적 단식이 좋다는 이유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생활 방식들은 결국 나의 면역력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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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것은 나의 면역력을 무너뜨려

암이라는 결과를 불러왔으며

이는 조건의 변화에 무지했던

나의 고집이 낳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규칙은 본래 나를 지키고 삶을 안정시키기 위한 약속이어야 하지만 나는 그 약속을 나를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변화의 신호를 무시한 채 이전의 방식만 고집하며 몸의 연식이 바뀌고 삶의 구조가 달라졌음에도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로 일상을 밀어붙이며 스스로를 소진시켜왔던 것이다.


사전적 의미는 단순하지만 실제 삶의 규칙은 훨씬 더 복잡하다. 익숙한 환경에서 유효하던 규칙이 낯선 조건 속에서는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이끌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나를 지켜주는 방패였던 규칙이 다른 순간엔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다. 이 문장은 그런 사실을 새삼 확인시켰다.


나는 투병을 시작한 이후 규칙이라는 단어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치료 전의 나는 규칙을 안정의 장치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아니다.


식습관, 운동량, 수면 패턴, 일의 강도, 심지어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기존의 규칙은 단 한 가지도 그대로 유지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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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안정이었지만

동시에 변화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구조물이었다.


결국 나는 규칙을 고정된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장으로 다시 정의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달라지면 규칙도 바뀌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를 뒤늦게야 이해했다.


예전의 나를 중심으로 만든 규칙이 지금의 나에게도 맞을 거라고 믿는 것은 오만에 가까웠다.


규칙은 나에 앞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태를 따라 조정되어야 했다.


감정적으로도 규칙에 대한 거리감이 생겼다.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강박은 종종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예전의 체력 기준으로 운동을 하려다 몸이 무너진 적도 있었고, 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고집 때문에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해 헤맸던 순간도 있었다.


규칙은 선한 의도를 담고 있지만 무조건적인 옳음이 아니다. 규칙은 도구일 뿐이며 상황보다 우선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규칙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내가 내린 실천적 결론은 간단하다.


변화하는 조건을 먼저 읽고 그 조건에 맞게 규칙을 다시 써야 한다. 지키는 법보다 고쳐 쓰는 법을 더 자주 연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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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나는 새로운 규칙을 필요로 한다.


지금의 나는 몸 상태에 따라 생활 규칙을 그때그때 다시 만든다. 피곤하면 쉬는 것이 우선이다.


글이 안 써지면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규칙이 나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규칙을 다스린다는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규칙을 바꾼다는 것은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이 지금 어떤 조건 위에 서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변화한 조건을 기준으로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이 진화이고 그 진화가 곧 내 삶의 지속 가능성을 지켜주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라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조건이 달라지면 규칙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 단순한 원리 속에는 나 자신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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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화는 몸이 먼저 알고 삶이 먼저 알려주며

내가 늦게 따라가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몸은 매일 달라지고 마음 상태도 계속 변한다. 어제의 기준을 오늘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다. 변화하는 나를 따라 규칙도 함께 이동해야 한다.


오늘 읽은 문장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규칙은 정답이 아니며 언제나 조건의 영향을 받는 임시적 결론일 뿐이라고.

그래서 규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부 문장이어야 한다고.


나는 ‘규칙’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규칙은 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조정가능한 살아 있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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