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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은둔은 단절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어두는 조용한 경계선이다.은둔은 단절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어두는 조용한 경계선이다.

새벽의 어둠이 절정에 이르고 차가운 공기가 책상 위로 스며들었다. 서재에 앉아 노란색 책 한 권을 펼치며 온기를 찾는 마음으로 새벽을 맞았다.


아직 세상은 미동도 없었고 창밖의 기온은 몸을 더 웅크리게 만들었지만 책 속에서 흘러나오는 문장들은 묘하게 따뜻했다.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 단순하게 쓰고 살아가는 작가의 일상은 어둠이 아닌 빛의 쪽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길잡이 같았다.


오늘 나의 생각을 깨뜨린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사회적 관계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나와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


함께 노는 것도 재미있지만 혼자 노는 게 더 재미있어 열심히 혼자 있으려는 사람.


관계에서 모든 의미를 찾기보다 혼자 무언가를 하고 그 성취를 맛보는 데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명랑한 은둔자는 이런 사람이다.”

단순생활자 중에서 - 38page


은둔.

사회적 활동이나 인간관계를 끊고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살아가는 것.

속세의 일에서 물러나 조용한 곳에서 스스로를 감추며 사는 삶의 태도.


사전적 의미는 언제나 어둠 쪽에 가까웠다. 단절과 후퇴와 숨음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책 속에서 만난 은둔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세상과 선을 긋는 선택이었고 나를 다시 발견하기 위한 독립의 방식이었다.


명랑한 은둔과 상처로 숨어버린 은둔의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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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은 스스로 선택한 거리다.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삶의 소음을 잠시 멀리 두는 결정이며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조용한 용기다. 반면 상처로 밀려난 은둔은 도망이자 방어에 가깝다.


마음이 다친 사람이 세상이 더 다치게 할까 두려워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 가두는 형태다.


전자는 나에게로 향하는 자발적 귀환이라면 후자는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리는 퇴각이다.같은 ‘혼자 있음’이라 해도 마음의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한쪽은 나를 회복시키고 다른 한쪽은 나를 소모시킨다. 그래서 은둔이라는 단어 하나 속에 두 개의 전혀 다른 삶의 태도가 공존하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내가 좋아하는 하대 작가가 말하는 ‘셀프고립’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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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져서 고립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잠시 물러서는 고립.


타인이 만든 벽 속으로 떠밀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내가 선택한 거리두기. 이 두 개념은 같은 결로 이어지고 있었다.


퇴사하던 날 나는 그런 은둔을 선택했었다. 익숙했던 관계들로부터 잠시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30년간 이어온 금주를 다시 단단히 붙잡았고 술을 매개로 이어졌던 인연들과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라 믿었고 그 선택이 조금은 명랑한 은둔자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암이라는 복병을 만난 이후 그 은둔은 전혀 다른 색을 띠기 시작했다. 명랑함은 흐려지고 우울함이 스며들었다.


치료 과정에서 나는 더 깊이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스스로를 더욱 밀어넣기만 하면 외부의 걱정도 소란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병실의 벽을 바라보며 차갑게 내려앉은 날들이 있었다. 은둔은 회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손을 놓으려는 마음의 모양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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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어둠 쪽으로 더 걸어가려는 순간마다

나를 붙잡는 사람들이 있었다.


손을 내밀어주는 가족이 있었고 말없이 응원하는 지인이 있었고 다시 세상 쪽으로 고개를 들게 하는 여러 문장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 대신 밝은 쪽으로 길을 비춰 주었고 내가 스스로 끊어버리려 했던 연결을 다시 묶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진짜 은둔은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은둔은 숨기 위한 어둠이 아니라 나를 발견하기 위한 조용한 빛이었다.


투병의 과정에서 나는 그 사실을 더 또렷하게 알았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흔들릴 때에는 그 어떤 관계보다 나 자신에게 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타인의 기대나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중심으로 돌아왔을 때 마음의 온도는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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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모으고 있었다.


은둔은 나약함의 선택이 아니라 견디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어둠 속에 웅크린 것이 아니라 밝은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멈춘 자세였다.


이 작은 깨달음이 오늘 새벽의 차가움을 조금 덜어주었다.


나는 ‘은둔’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은둔은 단절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어두는 조용한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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