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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어둠의 3요소가 합쳐진
1년전의 사건.

by 마부자

오늘 아침 공기는 겨울이 성큼 다가온 듯 유난히 차가웠고, 창문 너머로 불어오던 거센 바람은 회복되지 않은 내 몸을 더 천천히 움직이게 하며 새벽의 시작을 더욱 조용하게 만들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따뜻한 온기가 식도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며 굳어 있던 속을 풀어주는 듯했고 나를 조금씩 깨어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두운 새벽 책상 앞에서 나는 작은 휴식 같은 책을 찾듯 황보름 작가의 <단순 생활자>를 펼쳐 들었고, 오늘은 그 안에 담긴 ‘휴식’이라는 단어에 마음을 기울이며 글을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잠시 켜 두었던 TV에서는 따뜻함과는 정반대로 마음을 먼저 얼어붙게 만드는 뉴스들이 흘러나왔고 그 소식은 새벽의 공기보다 더 차갑게 다가왔다.


2024년 12월 3일, 작년 오늘을 떠올리게 하는 방송들은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던 그 어두운 하루를 다시 불러내며 누구에게도 익숙해질 수 없는 그 긴장감이 여전히 현재처럼 느껴졌다.


나는 투병을 겪으며 시간이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배웠고, 아플 때의 하루는 지나치게 길고 회복의 기운이 돌아올 때의 하루는 절반처럼 짧게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처럼 거대한 사건을 마주했을 때의 시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시간의 흐름은 영원처럼 멈춰있는 느낌이었다.


작년 느닷없이 내려졌던 그 명령은 나라 전체를 깊은 어둠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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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TV 화면을 바라보며

내 병이 가져온 개인적 어둠과

사회의 어둠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몸속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나라에서 벌어지는 혼란은 닮은 결을 가진 듯 보였고, 어떤 어둠은 스스로 만들어지지만 어떤 어둠은 타인의 욕망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차이는 분명하지만 그 어둠이 인간을 흔드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비슷했고, 오늘도 나는 그 생각을 떠올리며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 지경까지 몰아갔는지 생각해보았다.


권력을 잃는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더 많은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는 환상이었을까? 통제할 수 없는 순간에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작년 12월 3일 그들은 가장 어두운 형태의 본성을 드러냈고 어제 읽은 <다크심리학> 속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마키아벨리즘과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즘의 개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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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3요소라고 칭한 세 가지 성향이 결합하면 인간은 타인을 도구로 만들기 쉬워지고, 목적만 남겨 두고 윤리와 책임은 사라지며 자기애만 커져 가는 심리가 어떤 현실을 만들어내는지 그날 그들은 보여주었다.


작년 오늘의 사건들은 책 속 개념과 지나치게 정확하게 맞물려 있었고, 마치 누군가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그대로 복사해 현실 위에 펼쳐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투병을 하며 나는 마음의 방향이 삶의 무게와 결과를 얼마나 크게 바꾸는지 깨달았고, 병은 내 안에서 자라난 어둠이었지만 그 어둠과 싸우는 마음의 힘은 여전히 내 쪽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의 어둠을 다스리지 못했고, 결국 그 어둠을 국민들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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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어떤 심리는 개인을 무너뜨리고

어떤 심리는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런 심리를 보며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욕망이 길을 잃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몸의 병은 치료로 나아가지만 마음의 병은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한 누구도 치료할 수 없다는 점을 떠올렸다.


권력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음의 병은 더 깊고 넓게 퍼져 나가며 공동체 전체를 잠식하기도 한다.


몸속에서 싸워온 나의 고요한 싸움과 사회가 겪은 싸움의 닮음을 생각했다.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심리’라는 공통된 흐름이 있었고, 그 심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시간이 내게 준 배움을 더 단단히 붙잡기로 했고, 어둠은 언제든 찾아오지만 그 어둠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달라진다는 믿음을 잊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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