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어둠 사이로 아주 얇은 비가 내렸다. 비라기보다 공기에 스치듯 묻어나는 물기의 온도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베란다의 유리창에 남은 흔적을 보며 밤새 누군가 나를 조용히 다독여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새벽이면 몸의 구석구석이 더 민감하게 깨어난다. 들릴듯 말듯한 빗소리와 함께 짧은 명상을 마치고 차 한잔과 함께 서재의 책상 앞에 앉았다.
지난 주부터 함께 해온 황보름작가의 <단순생활자>의 마지막 부분을 펼치며 오늘은 '외로움'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글로 작성하며 새벽을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이가 시리다 못해 신경까지 건드리는 듯한 치통은 결국 나를 치과로 이끌었다.
암이라는 병과 맞서 싸웠던 시간보다 치과 진료대에 누워 있는 일이 더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란 이런 데서 드러나는 건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검사 결과는 예상보다 복잡했다. 오래전에 금으로 씌웠던 부분은 다시 교체해야 하고 잇몸도 손상이 많아 치료가 필요하고, 충치까지 새로 발견되었다.
어금니 하나는 경우에 따라 발치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묘하게도 예전 같으면 크게 놀랐을 소식이 이제는 차분하게 들렸다.
삶의 큰 고비를 지나오면
작은 고비 앞에서 마음이
다르게 반응하는 법을 몸이 습득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단순한 치과 치료 하나도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암 병원 주치의의 허락을 받아야만 치과 일정이 진행될 수 있었다.
아프다는 건 결국 내 삶의 모든 선택지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구나 싶었다.
병원을 나서다 같은 건물에 신경외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왕 발걸음이 닿은 김에 오랫동안 괴롭혀온 어깨 통증도 확인해보기로 했다.
투병 전부터 시작된 통증이었지만 암이 목 신경을 자극해 등과 어깨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뒤, 그저 치료가 끝나기만 기다렸었다.
실제로 치료가 끝났을 땐 통증이 사라졌고 그게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최근 다시 시작된 통증은 어깨 위쪽에서 내려와 팔을 뒤로 올리지 못할 만큼 심해지고 있었다.
그동안 인근의 다른 신경외과와 신경과를 다니며 원인을 찾으려 했는데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오늘도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오늘 의사는 단번에 오십견 초기 증상이라고 말해주었으며 초음파와 엑스레이를 보면서 확인을 하자고 했으며 결과는 어깨에 물이 차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통증보다 먼저 마음 한쪽이 무겁게 느껴졌다.
오십견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진단명이 아니라,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알려주는 신호 같았다.
젊을 땐 나와 상관없을 줄 알았던 단어가 이제는 내 어깨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서글프면서도 한편으론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세월이라는 것은 늘 이렇게
몸을 통해 가장 먼저 말을 건넨다.
무리했던 날들, 아프다는 말을 쉽게 넘기던 젊은 날의 버티기, 그 모든 시간이 다시 나를 찾아와 “이제는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이제는 나이를 인정하는 일이 패배가 아니라, 새로운 리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느껴졌다.
오십견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오늘 내게 세월의 무게를 담담하게 건네고 있었다.
어깨에 약 3회 정도의 주사와 물리치료를 병행하면 나아질 거라는 말을 듣고 나니 그동안 알 수 없는 통증을 안고 지내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치과, 신경외과, 초음파, 주사, 물리치료... 잠깐 치과만 들를 생각으로 나왔던 하루가 두 병원을 오가며 3시간이라는 시간을 품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웠다. 마침내 정확한 이름을 가진 통증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병에는 이름이 붙어야 비로소 그 병과 대화가 가능해진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고 난 후의 하루는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 따른다.
병원도 ‘나와 맞는 곳’이 있다는 말을 오늘에서야 실감했다. 의사 한 사람의 설명, 병원 안의 공기, 진료실에서의 말투 하나까지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곳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을 발견한 날은 치료의
첫 걸음을 제대로 내딛은 날과도 같다.
새벽의 비가 내린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아마도 오늘을 더 견딜 수 있게 하려는 작은 위로였을 것이다.
통증의 정체를 알았고 치료의 방향을 잡았고 돌고 돌아 다시 걷는 길 위에서 ‘괜찮아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아주 작게 스며들었다.
오늘 병원을 나서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은 이제 예전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버텨주는 견고한 기계가 아니라 한 번씩 멈춰 서고, 점검하고, 고쳐가며 살아가야 하는 오래된 친구에 더 가깝다는 것을.
치과 치료 하나, 어깨 통증 하나도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음을 오늘에서야 또렷하게 실감했다.
예전엔 조금 아파도 시간이 해결해주던 일들이 이제는 반드시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정비해야만 하는 문제로 바뀌어 있었다.
몸의 이곳저곳에서 울리는 작은 알람들은 “너 이제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조금씩 고치고 천천히 살아도 된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오늘의 나는 그 신호들 앞에서 조금은 겸손해지고, 조금은 단단해지고, 이제는 스스로를 정비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오늘의 하루를 조용히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