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치료 3개월 경과,
핵의학 검사 받는 날.

by 마부자

어젯밤, 오전 5시에 알람을 맞춰 놓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알람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고 자연스레 눈을 떴다.


칠흑 같은 새벽, 외출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섰다. 예전에는 거추장스런 장식에 불과했던 목도리가 어느 순간부터는 내게 반드시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동대구에서 오전 6시 21분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첫 지하철을 탔다. 첫차라 사람도 거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세상은 늘 나보다 더 일찍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광경을 보며 스스로에게 겸손한 마음을 가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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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두운 동대구역 광장을 지나 플랫폼으로 향했다. 찬 바람이 불어오고, 지난 9월 마지막 검사를 들으러 이 자리에 섰던 때가 떠올랐다.


그땐 반팔 차림이었는데, 오늘은 두꺼운 후드티에 목도리까지 둘렀다. 고작 3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체감으로는 1년은 된 듯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계절이 급히 바뀌는 동안 내 몸도 그만큼 빠르게 회복했다는 생각과, 아직 겨우 3개월뿐이라는 생각이 겹쳐 플랫폼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기차에 올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난 몇 달의 흔적들을 떠올렸다.그리고 자연스럽게 ‘흔적’이라는 단어를 오늘의 글감으로 휴대폰을 꺼내 짧은 문장들을 기록했다.


오전 8시 3분, 수서역에 도착해 #3 게이트로 향했다.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셔틀버스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수서역 #3게이트에 서는 병원 셔틀(서울아산, 강남세브란스, 삼성서울병원)중에는 단연 삼성병원 줄이 가장 길었다. 결국 셔틀 3대를 보내고 나서야 탈 수 있었다.


버스에 오르면 늘 드는 생각이 있다. 세상에는 정말 아픈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한때는 그 사실에서 알 수 없는 위안을 느낀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단지 모두가 각자의 고통을 견디며 하루를 살아낸다는 사실만 또렷하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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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출발하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9시 15분 검사면 15분 전에 오셔야 하는데 지금 어디세요?”

대구에서 오고 있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짧은 “네, 네.”뿐이었다.


수많은 환자의 스케줄을 고려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마음 어딘가가 조금 허전해졌다.


본관에서 내려 암병원까지 걸어갈지, 버스를 좀 더 타고 암병원에서 내릴지를 고민하다 본관에서 실내로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순간 로비를 지나는 길에 핵의학과라는 이정표가 보여 아무 생각 없이 지하로 내려가 접수를 했는데, 그곳은 본관 핵의학과였다.


간호사는 “환자분은 암병원 핵의학과로 가셔야 해요”라고 말했고 거의 동시에 암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언제 오시나요?”

그 말을 듣자 마자 건물 사이를 뛰기 시작했다.


7월부터 쉼 없이 드나들던 공간인데도 길을 헷갈린 내 모습이 순간 한심하게 느껴졌다.


숨을 몰아쉬며 도착하자 간호사들의 눈빛이 마치 ‘장화 신은 고양이’가 바라보는 듯했다. 서두르라는 안내를 들으며 주사실로 이동했고, 조용히 죄송하다고 말한 뒤 준비를 마쳤다.


PET-CT 검사는 동위원소 주사를 맞고, 약 1시간 동안 누워 전신에 퍼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휴대폰도, 독서도 안 되고 오직 안정만 허용되는 시간이다.


많은 생각이 밀려올 것 같았지만 오히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결과가 잘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만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름이 불리고 검사실로 들어가자 특유의 삐 소리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좁은 기계 속으로 침대가 들어갈 때, 소리와 움직임이 심장 박동을 더 빠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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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통속에서 돌아가는 낯익은 기계음. 귀로 들리는 소리와 눈으로 보이는 기계 돌아가는 모습은 나의 심장 박동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며 나를 더욱 춥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약 20분의 시간이 지나고 검사대가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간호사는 “수고하셨어요”라고 조용히 말했다.


검사가 끝났다는 안내를 받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음 진료일이 12월 22일이라는 말을 들었다. 새벽 5시에 시작한 여정에 비해 조금 허무할 만큼 담백한 마무리였다.


암병원 정문에서 다시 셔틀을 타고 수서역으로 돌아왔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10시 50분이었다.


검사 시간 예측이 어려워 돌아가는 표를 미리 예매하지 못했는데, 도착해서 보니 모든 표가 매진이었다. 카페에서 30분 넘게 반복 조회한 끝에 겨우 12시 30분 기차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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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준비로 금식했기에 허기짐이 크게 밀려왔다. 샌드위치와 디카페인 라떼로 간단히 속을 채웠다.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아 돌아오는 길, 피로가 몰려와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꾸벅거리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동대구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플랫폼에 발을 디 디는 순간, 별것 한 것도 없는데 아침부터 바쁘게 흘러간 하루였고 검사를 마쳤다는 사실이 주는 작은 안도감과, 다시 기다림이 시작된다는 감정이 동시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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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기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을 앓은 뒤부터는 어떤 날은 지나치게 길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짧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결국 하루의 무게는 사건이 아니라 마음이 정한다는 것을 오늘 다시 확인했다.


검사 결과가 좋기를 바라는 마음, 낯선 공간에서 느낀 작은 긴장, 길을 잘못 들어 분주하게 뛰던 순간마저도 결국은 나를 이어가는 한 부분이었다.


무엇을 해냈다기보다 해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되는 날이 있다


결과가 어떻든, 나는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건너왔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안도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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