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는 오늘따라 유독 차갑게 스며들었다. 창문을 조금 열자마자 베란다로 밀려든 냉기가 느껴졌고 이 차가움을 오랜만에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얼마전까지 감기로 인해 이런 공기조차 조심스럽게 숨을 쉬던 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 차가움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다르게 다가왔다.
주방으로 걸음을 옮겨 새로 산 머그컵에 약초를 탄 따뜻한 차를 부었다. 컵을 감싸는 손끝에 오래 머무는 온기가 묘하게 좋았다.
예전 같으면 그냥 스쳐 지나갈 감정이지만 요즘의 나는 이런 미세한 온도 변화가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몸이 회복된다는 건 거창한 순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렇게 손끝의 온기를 정확히 느끼는 일, 아침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마음과 아주 작은 감각들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차를 마시며 김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를 펼쳤다.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도 마음 한쪽이 조용히 흔들렸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변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시인의 말이 오늘따라 깊이 들어왔다.
나 또한 그 바다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켜온 시간도 폭풍 같았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계절을 지나 결국 ‘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고 있다는 믿음이 조금씩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시인의 문장은 차가운 아침 공기와 닮아 있었다. 처음엔 차갑지만 이내 마음 깊숙한 곳을 맑게 정리해주는 느낌이었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지난 시간의 흔적들이 다시 떠올랐고, 그 흔적 위에 얇게 내려앉은 안도감이 있었다.
내가 견뎌온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온도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 온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온도였다.
오늘 아침의 냉기와 손끝의 따뜻함 그리고 바다가 전해준 잔잔한 울림들의 이 세 가지가 묘하게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삶이란 결국 이렇게 조용히 오고 가는 온도들을 견디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오늘 새삼 알았다.
나는 아직 회복 중이고, 아직 불안도 남아 있지만 김병률시인의 시를 대하는 오늘 조금은 더 감성적이 되어 혼자 바다처럼 조용히 말해보고 싶다.
나도 잘 있습니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온 막내가 웃으며 며칠 전 면접 본 아르바이트에서 합격을 했다고 한다. 집 인근의 대형 프랜차이즈 돈까스집이었다.
당장 이번주 수요일부터 일을 시작할 예정이며 내일 다시 방문하여 최종 업무시간과 일정등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드디어 막내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것이 체감적으로 다가오는 말이었다.
오후에는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밝은 얼굴로 소식을 전해주었다. 며칠 전 면접을 보았던 알바에 합격했다고 한다.
집 근처의 대형 프랜차이즈 돈가스집이며 이제 이번 주 수요일부터 일을 시작하고, 내일 다시 방문해 업무시간과 세부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며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실감이 들었다. 이제 정말로 막내가 ‘학생’이라는 울타리에서 한 걸음 나와 사회라는 큰 장의 초입에 서 있다는 사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아이의 성장은 늘 내 생각보다 빠르고 어느 날 이렇게 불쑥 찾아온다는 것을 다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셋이나 키웠으면서 이런 사실을 이제야 느끼고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을 요즘 막내를 통해 하고 있다.
학교와 집 사이를 오가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책임지고 처음 만나는 낯선 환경에서 스스로의 몫을 만들어가려는 것이다.
짧은 문장 하나였는데도 마음속에서 오래 울렸다. 어떤 아르바이트인지보다 이제 사회의 일원이 되어 간다는 사실이 훨씬 크게 전해졌다.
투병을 지나온 동안, 내가 잠시 멈춰 있던 시간 동안 막내는 조금씩 자라고 앞으로 걸어갈 준비를 해온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기분 좋게 긴장이 풀리듯 한숨이 나왔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오늘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머그컵의 온기, 그리고 시집의 잔잔한 울림과 함께 또 하나의 조용한 선물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