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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햇빛 아래 있기만 해도
충분한 그 여유로움.

by 마부자


오랜만에 밝은 햇살이 창가로 가득 번져 들어오는 아침에 눈을 떴다. 자세를 고쳐 일으키는 순간, 몸이 먼저 오늘을 휴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의 나는 요일의 의미보다 몸의 리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어제 늦은 밤까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정주행하던 두 하이에나들(아내와 막내)은 여전히 깊은 잠 속에 묻혀 있었다.


창밖 동녘의 아파트 옥상 위로 햇살이 번져오고, 그 따스한 기운이 유리창을 넘어 방 안까지 스며드는 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문득, 지난 한 주를 떠올렸다. 실내자전거로만 운동을 하며 집 밖을 거의 나서지 않았던 날들이었다.


말로는 회복을 생각했다고 했지만, 결국 햇빛 한 번 제대로 받지 않은 일주일이었다.


식물도 사람도 정기적으로 태양을 통해 광합성을 해야만 숨이 트이고 몸이 방향을 찾는다. 늘 외근을 하던 때와는 달리 요즘은 이 사실을 자주 잊게 된다.


옷을 갈아입고 천천히 현관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아파트 입구 쪽으로 강한 햇살이 한 덩어리로 떨어져 있었다.


피부에 직접 닿자마자 따갑다 싶을 만큼 강한 빛이었다. 초겨울의 공기는 분명 차가웠는데, 햇살만큼은 여전히 늦가을의 잔열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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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늘어선 나무들은

지난여름의 초록을 대부분 반납한 채

노랑과 갈색의 흔적을 붙잡고 있었다.


내 걸음은 지난 2주간 감기로 멈춰 있었지만, 계절은 잠시도 쉬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광합성이라도 하듯 온몸으로 햇빛을 받아내며 천천히 걸었다. 아직 잔기침이 남아 있어 먼 곳까지 나갈 수는 없었기에, 아파트 인근 공원만 가볍게 돌기로 했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무심하게 스쳐가는 공기와 바람의 경계를 느끼며 길을 걷는 순간, 인근 단지 화단 쪽에서 작은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 두 마리였다.


서로의 몸을 거의 포개다시피 붙여 놓고, 오래전부터 같은 계절을 지나온 이들처럼 조용히 햇빛을 받고 있었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평온,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애틋함도 아닌 그들만의 자연스러운 거리.


친구일까, 연인일까, 혹은 함께 태어난 남매일까. 두 마리의 관계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단지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있는 두마리의 고양이가 너무 평온해 보였다.


둘이 만들어내는 온도의 결이 묘하게 닮아 있었고 그 닮음이 오히려 관계의 정답을 흐릿하게 만들어 더 아름다운 장면처럼 느껴졌다.


늦은 아침 햇살 속에서 고양이들이 만들어내던 작은 움직임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안정된 정적 속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이름도 모르고, 다시 볼 일도 없을 두 생명체가 잠시 내 일상의 빈틈을 채워주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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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양이들이 만들어내던

그 평온함이 오래도록 눈에 남았다.


햇빛 아래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충분해 보이는 그 여유로움이, 오늘의 나에게는 너무 부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존재 자체로 하루를 온전히 견디고 있는 모습이 묘한 울림처럼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었다.


나는 아직도 무언가 해야만 안심이 되는 삶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지만, 언젠가 저 고양이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오길 바랐다.


그 평온함이 오늘의 마지막 장면으로 남아, 조용히 내 안의 속도를 늦춰주고 있었다.


늦가을의 햇살 아래 길냥이들이 내게 남은 삶의 속도를 알려주는 것만 같다.


조금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는 것, 멈춰 서 있는 순간에도 무언가 자라고 있다는 것, 햇살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버틸 온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작은 몸짓에서 내가 잃어버리고 살던 평온이 잠시 되살아나는 듯했다.


병을 지나며 잃어버린 속도감 대신, 이제는 저 고양이들처럼 존재 그 자체로 쉼을 허락받아도 된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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