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몸속에 남아 있는 지난 주말 대전에서의 여정을 완전히 씻어내기 위해 온전히 집에서 휴식 같은 하루를 보냈다.
아내는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덕분에 나는 하루 종일 한 권의 책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추운 날씨와는 달리 따뜻한 감정을 품은 책,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넘기는 하루였다.
이 책은 절대로 빨리 읽을 수가 없는 책이었다. 아니, 빨리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문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 한 곳이 묘하게 붙잡혔고, 서두르는 순간 그 감정들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면 늘 답답한 마음이 든다.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하는 일들, 하고 싶지만 끝내 용기가 나지 않는 일들이 책 속 문장에 걸려 나를 향해 올라온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내 사고의 방식과 용기 없음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나이고, 내가 책 속의 주인공인 기분이었다.
주인공이 담담하게 내뱉는 독백과 처한 상황은 내가 걸어온 지난날을 그대로 비춘 한 장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잠시, 아주 짧은 순간 동안 내가 에세이를 쓴다면 이 소설과 거의 같은 내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은 나를 깊숙한 곳으로 끌고 갔고 내 삶의 습관과 마음의 방향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했다.
책을 덮고 난 뒤, 집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아내가 늦잠으로 시작한 하루는 저녁까지도 느린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 느슨한 리듬이 오늘 하루의 분위기를 그대로 감싸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방 안의 공기는 오랜만에 따뜻했고 나는 그런 온기를 곁에 두고 조용히 하루를 정리할 수 있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 좋은 하루였다.
병을 겪기 전에는 이런 고요함이 불편한 때도 많았다. 멈춰 있는 순간을 견디지 못해 억지로 무언가를 끼워 넣으려 했고 마음의 빈틈을 두려워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빈틈이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가 오히려 내 삶이 다시 숨을 들이키는 자리였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오늘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물론 한권의 독서라는 큰 의미있는 일을 했지만) 그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가 이상하게도 나를 가볍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때로는 조용한 하루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지키는 힘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런 작은 휴식의 순간에서 조금씩 자란다는 것.
그렇게 토요일은 조용히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