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공기는 차분했다. 창밖의 추위와는 달리 보일러로 인해 훈훈해진 방안의 열기로 인해 건조해진 목 상태를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가습기를 켜고 젖은 수건을 몇 장 널어도 손상된 침샘으로 인해 건조해진 목은 밤새 나를 괴롭히는 새로운 증상이 되었다.
물론 막 퇴원했을 때의 증상에 비하면 지금은 대단히 좋아진 것이지만 밤새 말라버린 편도 내부의 건조함은 여전히 불편함을 동반하는 것이 사실이다.
약간의 온기가 담긴 온수 한잔으로 밤새 건조해진 목을 달래고 이어서 따뜻한 차한잔과 함께 휴일의 하루를 시작했다.
약간의 건조함과 불편함이 있는 하루의 시작이지만, 반대로 밤에 잠을 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에게는 분명한 회복의 신호였다.
아침을 지나며 나는 평범함의 기준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하루의 시작이 이제는 조심스럽고 감사한 시간이 되었다.
최근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의 아침 루틴은 평일과 거의 비슷하다. 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고 같은 동작으로 시간을 보낸다.
차한잔과 함께 주말 오전 책상 앞에서 펼친 오늘의 책은 210년 전 숲속에서 삶을 보낸 철학자이면서 문학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었다.
워낙 많은 분들의 찬사를 받고 추천한 책이기 때문에 책의 첫장을 펼치며 오히려 낯익은 느낌이 들 정도로 친숙하게 다가왔다.
책의 첫 장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뜻밖에도 평온함이 아니라 무게였다.
소로가 말하는 삶은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짊어지고 사는 ‘소유의 고역’이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이 편리함이 아니라 책임과 부담으로 쌓여 왔음을 떠올렸고, 어쩌면 삶을 무겁게 만든 것은 결핍이 아니라 과도한 소유였다는 생각에 잠시 책 위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이렇게 책과 함께 흘러가는 오전의 시간이 단조롭기보다는 나를 다시 삶의 중심으로 데려다주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주말 동안 아니, 투병이후의 시간들은 무엇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아도 나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고 있어 더 여유롭게 다가온다.
치료 이전의 평범함과 지금의 평범함은 같은 말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제 이런 하루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 얻어진 결과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내는 이른 점심을 먹고 볼링장으로 향했고, 막내는 친구들과의 약속과 오늘도 이어진 알바 일정을 말하며 분주히 집을 나섰다.
주말임에도 집은 금세 조용해졌고 혼자 남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따뜻한 라떼 한 잔을 마시며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오전의 감정을 안은 채 소로의 문장을 따라갔다.
이 책은 빠르게 읽을 수 없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210년 전의 문장이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저녁까지 이어진 독서를 마치며 오늘의 일기는 길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유함으로 생기는 고역에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을, 오늘은 비교적 또렷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