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 오감만족 챌린지 추천을 받았습니다.

by 마부자

블로그에 글을 쓰며 늘 저를 ‘소중한 블벗’이라 불러주시는 승희c님께 뜻밖의 챌린지 요청을 받았습니다.


별다른 예고도 없이 건네진 한 문장인데도 어쩐지 순간적으로 감각이 멍해졌습니다.

그러나 챌린지의 이름을 보고 따뜻한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오감만족 챌린지라니.


이름만 들어도 삶을 조금 더 섬세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바람의 냄새 하나, 손끝의 감촉 하나, 새벽 공기의 온도 하나까지도 다시 느껴보고 싶어지는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어쩌면 일기를 쓰는 일과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의 순간들을 다시 쓰다듬어 보며 그 속에 숨어 있던 감정을 발견하게 되듯, 오감을 천천히 깨워보는 일도 결국 나를 조금 더 느끼고,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이니까요.


기대하지 않았던 요청이지만, 그래서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건네준 다정한 초대장처럼 느껴졌고 잠시 멈춰 서서 나의 다섯 가지 감각을 다시 정돈해보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레 따라왔습니다.


마부자에게 오감 만족의 순간은....

올해 5월, 제 삶에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한동안 죽음이라는 문 앞에 가까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치료를 마치고 회복의 시간을 지나오며 비로소 깨닫습니다. 제게 오감만족이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경이롭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요.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사한 나날들. 지금의 저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질 수 있다는 그 모든 행위가 곧 행복으로 느껴집니다.


그동안 ‘가장’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번 오감만족 챌린지를 계기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제 마음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아주 짧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분명한 소회로 남을 시간입니다.


1) 시각적 행복은?

치료를 마치고 회복의 시간을 지나며, 매일 새벽 짧은 명상을 위해 베란다에 서서 맞은편 아파트의 끝에서부터 밝아지는 동녘의 풍경을 바라보며 맞는 그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임에도, 오늘도 그대로 존재해 준다는 사실만으로 고맙게 느껴집니다.


또한 오전에 책상 앞에 앉아 한 권의 책을 펼칠 때 눈앞으로 들어오는 글자들,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며 나누는 가족들의 웃는 얼굴 역시 요즘 제가 매일 확인하듯 바라보는 풍경입니다.


이 장면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오늘도 살아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처럼 느껴집니다.


2) 청각적 행복은?

요즘 제 하루는 새벽 알람 소리로 시작됩니다. 예전에는 귀찮게만 느껴졌던 그 소리에 지금은 분명한 행복이 담겨 있습니다. 알람 소리에 깼다는 것은 지난밤 불면의 고통 없이 깊이 잠들었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고 알람을 끄는 그 짧은 순간에, ‘아, 오늘도 아침을 맞이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옵니다. 하루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또렷하게 들릴 줄은 몰랐습니다.


특별한 음악도 큰 소리도 아니지만, 나를 오늘로 불러내는 그 단순한 소리가 지금의 제게는 가장 확실한 생의 신호처럼 들립니다.


3) 후각적 행복은?

투병 이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실 냄새로 무언가를 만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외출도 줄었고 계절의 냄새를 온전히 느낄 기회도 예전보다 적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요즘 유독 마음에 오래 남는 냄새가 하나 있습니다.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위해 새 밥을 짓고, 밥솥 뚜껑을 여는 순간 퍼져 나오는 뜨거운 김과 함께하는 밥 냄새입니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마다, ‘아, 오늘도 함께 먹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살아 있기에 가능한 냄새, 살아 있기에 다시 맡을 수 있는 냄새라는 사실이 그 향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4) 미각적 행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항암 및 방사선 치료로 인해 미각이 상실되어 맛은 감각의 혼란이었습니다. 미각이 거의 사라져 모든 음식에서 고무줄 같은 맛만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예전처럼 완전하지는 않지만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맛이 돌아온다는 것이 이렇게 큰 기쁨일 줄은 몰랐습니다. 한 숟가락, 한 입을 천천히 음미하며 ‘느낄 수 있다’는 감각 자체를 받아들이는 요즘입니다.


5) 촉각적 행복은?

병원 복도에서 아내가 제 손을 꼭 잡아주던 순간의 체온, 딸이 아빠를 위해 병원에 함께 다니며 말없이 내밀어주던 손길은 지금도 제 손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 역시 요즘 제 마음을 가장 조용하게 다독여 주는 촉감입니다.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저는 늘 책의 촉감을 통해 마음을 정돈하곤 했습니다.


누군가의 손, 그리고 종이 한 장의 감촉이 이렇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요즘의 저는, 손끝으로 느껴지는 것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조금 더 단단히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감을 하나씩 돌아보며 적다 보니, 특별한 하루가 아니어도 삶은 이미 충분히 풍요롭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오늘도 숨 쉬고 느끼고 살아 있다는 감각 자체가 제게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진 이 감각들을 잊지 않고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에서도 저는 이렇게 작은 감각들에 기대어, 조심스럽고 단단하게 제 하루를 살아가려 합니다.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주신 소중한 블벗 '승희c'님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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