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아내의 생존 확률이
조금 더 높다졌다는 의미

by 마부자

오늘은 아내의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오전 10시 10분 예약에 맞춰 아내는 연차를 내고 함께 집을 나섰다.


초겨울의 하늘은 유난히 짙은 회색빛이었고,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처럼 공기가 낮게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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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거운 하늘은 병원으로 향하는

내 마음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아내는 이제 네 달에 한 번 약을 처방받고 주치의와 경과를 확인한다. 큰 이상이 없으면 1년에 한 번, 1박 2일 일정으로 입원 검사를 받는 단계다.


이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회복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작년 2월, 아내가 쓰러지고 수술을 받은 이후 한동안은 매달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가는 날이면 아내의 얼굴빛은 늘 하얗게 질렸고, 작은 말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긴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솔직할 것이다.


당시 나는 아내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 의사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 않느냐고, 괜히 걱정하지 말라고.


병원에 간다는 이유만으로 불안해하는 아내의 마음이 그저 과하다고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아직 병원이 가진 공포를 몸으로 알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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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단순한 확인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데려갔던

기억과 다시 마주하는 장소라는 것을.


좋아졌다는 말을 들어도 증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아도 그 문 앞에 서는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는 것을.


병원으로 가는 내내 아내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신경외과 진료 대기실에 접수하는 동안에도 침묵은 이어졌다.


그 침묵이 낯설지 않았다.


이제는 그 말없음이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내의 이름이 불렸고, 우리는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작년 2월 응급 상황에서 직접 수술을 집도했던 주치의는 아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수술한 지 굉장히 오래된 것 같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1년 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말에 우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경과가 매우 좋다고 설명했다. 위급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 상태는 놀라울 만큼 안정적이라고 했다.


다만 2년까지는 조심해야 하니 내년에 조영제 검사를 한 번 더 해보고, 이상이 없으면 이후에는 MRI 검사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입원 검사가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회복되고 있다는 말,

치료가 간단해진다는 말,

약이 줄어든다는 말은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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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확률이 조금 더

높아졌다는 의미로 들렸다.


약 처방을 하며 주치의는 보험 적용 문제로 약값이 크게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 배 정도 부담이 늘어날 거라는 말 앞에서 잠시 말이 막혔다.


치료를 위해 필요한 약이라는 걸 알면서도, 숫자가 주는 현실감은 쉽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아내는 다소 날 선 목소리로 약값에 대해 물었다. 회복 이후 아내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감정의 톤이 높아졌다.


기억력은 서서히 좋아지고 있지만 말투의 변화는 아직 그대로다. 의사는 웃으며 제도상의 문제라고 설명했고, 진료실에는 잠시 웃음이 흘렀다.


약국으로 가는 길 내내 아내는 약값과 정책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그 불평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밝은 얼굴로 투덜거리는 아내의 모습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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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렇게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재촉해도 계절이 자기 속도로 풍경을 바꾸듯, 아내 역시 자신만의 속도로 몸을 되찾고 있었다.


오늘은 그 느린 회복이 분명하게 보였고,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마음에 담았다.


기왕 연차를 내고 낮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날이었기에, 병원 일정이 끝난 뒤 잠시라도 바람을 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계획이지만 그런 마음을 품는 것 자체가 예전과는 달라진 나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병원 이후의 시간을 일상으로 돌려놓고 싶었다.


얼마 전 블벗이신 별꽃님 덕분에 알게 된 가산수피아가 문득 떠올랐다. 검색을 해보니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린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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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수피아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학하들안2길 105


아내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내는 너무 멀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저 맛있는 것을 먹고 가고 싶다고 했다.


창밖의 하늘은 여전히 잔뜩 흐려 있었다. 비인지 눈인지 모를 것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기색이었다.


이런 날씨에 괜히 높은 곳에 올라가다 고생하면 오히려 몸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아내의 말에는 딱히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는 이런 날에는 따뜻한 국물과 함께 몸에 좋은 채소를 먹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샤브샤브가 떠올랐고, 우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창한 계획 대신 서로의 몸을 먼저 생각하는 선택이 오늘은 가장 좋은 결정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집 근처의 샤브20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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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20 대구동구점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로 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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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의 식사 자리였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정돈된 공간은 병원 이후의 긴장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신선한 채소와 소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설명보다, 조용히 앉아 마주 보는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점심시간을 살짝 피해 오후 한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한적할 줄 알았지만 평일임에도 매장은 제법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풍경이 이상하게도 반가웠다. 일상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그 흐름 속으로 조금씩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평소에는 가쓰오부시 육수를 당연하게 선택해왔지만, 병을 겪고 난 뒤부터는 자연스럽게 건강을 먼저 살피게 된다.


메뉴판을 보다가 콩물육수가 눈에 들어왔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지금의 몸에는 그 선택이 더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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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맛본 콩물육수는 고소했고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채소를 듬뿍 넣어 먹고 난 뒤, 남은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으니 마치 따뜻한 콩국수를 먹는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음식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콩국수는 여름에 차갑게 먹어야 한다는 나의 오래된 고정관념이 그 자리에서 깨졌다. 계절보다 중요한 것은 몸의 상태와 마음의 준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육수를 한 번 더 리필해 먹었고, 그 선택이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픈 이후 처음으로 맛있다고 느낀 음식, 몸이 편안하다고 느낀 식사였다.


회복은 이렇게 소소한 감각의 되돌아옴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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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로 제공되는 카푸치노와 까페라떼를 테이크 아웃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병원으로 향할 때보다 훨씬가벼웠다.


훨씬 수다스러워진 아내가 했던 말을 또 했고 나는 같은 대답을 계속 해주어야 했지만, 같은 속도로 걷고 같은 방향을 바라본 하루였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무사히 지나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병원에서의 긴장, 식사 자리의 온기, 그리고 아내의 작은 불평까지. 그 모든 장면은 회복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었다.


회복은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이렇게 일상 속에서 조용히 쌓여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오늘 하루는 유난히 큰 의미를 남기지 않아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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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웃고, 내가 안도하고,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하루는 제 역할을 다했다.


이렇게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음에 조용히 감사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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