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된
식당과 우리의 미래

by 마부자

오늘은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다녀온 고깃집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일기를 남긴다.


회복 이후의 외식은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동시에 살아 있다는 감각을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라 늘 의미가 깊다.


아내와 둘이 오랜만에 삼겹살집에 들어섰다. 매장에 들어서자 종업원이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편한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사람의 온도가 담겨 있었다.


이곳은 저렴한 가격의 대패삼겹살과 함께 반찬을 무한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신선한 야채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가장 큰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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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이후 내 식탁의 기준은

확실히 달라졌다.


자리를 잡고 테이블 위에 놓인 키오스크로 주문을 했다. 버튼을 누르고 수량을 고르고 확인을 누르는 과정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설었다. 음식은 준비된 곳에서 셀프로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렸다.


잠시 뒤 로봇 종업원이 삼겹살과 맥주를 테이블로 가져왔다. 고기를 추가 주문하고 공기밥과 된장찌개를 주문하는 일도 역시 키오스크로 해결했다. 로봇은 말없이 정확하게 음식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마지막 계산 역시 테이블 위 키오스크로 마쳤다. 계산을 마친 뒤 출구 근처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매장을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이 막힘없이 매끄러웠고,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매장을 나서며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매장에 들어올 때 인사를 나눈 뒤로 인간 종업원과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전부였다.


커다란 매장 안에는 두 명의 종업원이 있었고, 그들의 주된 역할은 셀프 코너의 음식이 떨어졌는지 확인하고 채우는 일이었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그들을 다시 마주칠 이유는 없었다.


오늘 우리 부부처럼 아무 일 없이 먹고 나오면 인간 종업원을 다시 만날 일은 없다. 주문은 키오스크로 하고 음식은 로봇이 가져다주며 계산도 키오스크로 끝나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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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개입은 최소화되어 있었다.


이 장면은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의 풍경 같았지만, 며칠 전 내가 직접 경험한 현실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금 멍하게 만들었다. 기술은 이미 미래가 아니라 현재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날의 풍경이 계속 떠올랐다. 편리했고 효율적이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씁쓸함이 마음 한쪽에 남았다. 불편하지 않았기에 더 불편해지는 감정이었다.


최근 AI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빠르게 바꿔놓고 있다. 이제 AI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우리가 따라잡기 벅찰 정도다.


오픈AI와 엔비디아 같은 기업의 이름은 이제 뉴스가 아니라 일상 언어가 되었다.


기술의 주도권은 몇몇 거대한 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그 영향은 아주 구체적인 삶의 장면으로 내려오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아지 형태의 로봇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제는 사람처럼 표정을 짓고 여러 나라의 언어로 대화하는 인간형 로봇이 TV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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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진보는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


문득, 최근 청년과 중년의 실업률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그 뉴스와 고깃집에서 음식을 나르던 로봇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기술은 분명 인간의 노동을 덜어준다. 반복적이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점은 분명 환영할 만하다.


나 역시 치료를 겪으며 체력의 한계를 절감했기에 이 부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기술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갈 때,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 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효율 뒤에 사라지는 것은 종종 설명되지 않는다.


고깃집에서의 인사는 짧았지만 분명 사람의 것이었다. 그 한마디에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결이 있었다. 나는 그 온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로봇은 정확했고 친절했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잘못이 없기에 사과할 필요도 없었고, 기분을 살필 이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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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했지만 관계는 없었다.


인간과 로봇의 상생은 아마도 역할의 분리가 아니라 가치의 재정의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을 기계에게 맡기고 무엇을 인간의 영역으로 남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계는 효율과 정확을 담당하고, 인간은 관계와 판단을 맡는 방향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모든 일을 사람이 해야 한다는 말도, 모든 일을 기계가 해야 한다는 말도 극단이다.

나는 치료 이후 ‘속도’보다 ‘온도’에 더 민감해졌다. 빠르게 처리되는 일보다 천천히 주고받는 말 한마디가 더 중요해졌다. 이 감각은 아마 쉽게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기술은 인간을 대신할 수 있어도,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병실에서 느꼈던 감정들은 어느 로봇도 대신 견뎌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로봇을 경계하기보다, 인간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더 자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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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보다

인간의 존엄이 뒤처지지 않도록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느낀다.


고깃집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외식이 아니라 하나의 징후처럼 다가왔다. 이미 시작된 변화 속에서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그날의 일을 잠시 이야기했다. 우리는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사람의 자리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앞으로 이런 풍경은 더 흔해질 것이다. 문제는 그때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해지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편리함은 결국 우리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퇴원 116일차의 나는 여전히 회복 중이다. 몸을 되찾는 과정 속에서 삶의 균형도 다시 배우고 있다. 기술 앞에서 인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그 일부다.


오늘의 일기는 고깃집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이 사회의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완벽하지 않아도, 느리고 서툴러도, 서로를 인식하고 마주보는 삶.

그 자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며 오늘의 기록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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