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세탁은 치료의 과정,
건조는 회복의 과정

by 마부자

겨울답지 않게 한 낮의 햇살은 부드러웠다. 차갑고 날 선 계절이어야 할 하루에 뜻밖의 온기가 깔려 있었다.


그 온기를 핑계 삼아 이불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름 이불을 모두 걷어 차례대로 세탁기에 넣고 이불장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던 겨울 극세사이불을 꺼냈다.


이불장을 여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결심을 요구했다. 계절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다음의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 같았기 때문이다.


빨래를 넣고 세탁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집 안에는 낮은 진동과 함께 일정한 소리가 흘렀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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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가 직접 무언가를 애쓰지 않아도

시간과 과정이 알아서 일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세탁기 안에서 여름 이불은 물에 잠기고 세제와 함께 뒤집히고 다시 헹궈졌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지난 여름의 내가 떠올랐다.


내 몸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세척이 반복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실감하게 된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는 그 자체로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몸이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고 미각은 사라졌고, 피로는 이유 없이 쌓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 역시 하나의 세탁 과정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탁은 더럽다는 이유로 시작되지만 끝은 늘 깨끗함을 향한다. 당시의 나는 그 끝을 상상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견디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간을 함부로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건조기가 돌아가는 시간은 세탁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허락되는 과정이다. 물속에서 흔들리고 뒤집히는 동안에는 버티는 일밖에 할 수 없지만, 건조는 다르다.


더 이상 씻겨 내려갈 것도, 견뎌낼 것도 없다. 그저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제 온도를 되찾아 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세탁이 치료의 과정이라면, 건조는 회복의 과정이 아닐까 하고.

치료가 몸속의 문제를 제거하는 일이라면, 회복은 그 빈자리에 다시 체온을 불어넣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조기 안에서 이불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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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애쓰지 않아도,

시간과 온기가 알아서 제자리를 만들어 준다.


요즘의 나도 그렇다.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대신, 괜찮아지도록 허락받는 시간에 가까워졌다. 조급해하지 않고, 충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일.


완전히 마른 이불이 다시 사람을 덮듯, 나 역시 누군가의 하루를, 나 자신의 하루를 조용히 덮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회복을 받아들인다.


예전에는 이런 집안일을 서둘러 끝내야 할 일로 여겼다. 빨리 정리하고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세탁기 앞에 서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 이상 낭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치료 이후로 나는 속도를 잃었다. 아니, 어쩌면 속도를 내려놓았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빠르게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늘어났고 그 덕분에 놓치고 살았던 장면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겨울 이불을 꺼내 침대 위에 펼쳐 놓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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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은 단순히 몸을 덮는 물건이 아니라

하루를 버텨낸 나를 받아주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밤마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작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이불의 무게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그 압박이 지금의 나에게는 안정으로 다가온다.


치료를 마친 뒤 나는 이런 감각들에 유난히 민감해졌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예전보다 더 귀 기울여 듣게 된다.


하루 종일 돌아간 세탁기와 건조기는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모든 것은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다고. 충분히 뒤집히고, 충분히 기다려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그 말은 지금의 내 삶과도 닮아 있었다.


퇴원한 지 117일이 지났지만, 회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사라졌지만, 몸과 마음 어딘가에는 아직도 조심해야 할 부분들이 남아 있다.


세탁이 끝난 이불을 접으며 깨끗해졌다는 것은 과거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시간을 잘 통과했다는 증거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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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이 있었기에 세탁이 필요했고

세탁이 있었기에 지금의 상태가 가능해졌다.


암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그 무게를 피하려고만 하면 나는 다시 움츠러들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그 단어를 삶의 한 장면으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아 본다.


겨울 이불을 덮고 잠들 오늘 밤을 상상해 본다.

몸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숨이 깊어지기를 바란다.


특별한 꿈을 꾸지 않아도 좋다.

그저 아침까지 무사히 잠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의 세탁은 집안을 정리한 하루이기도 했지만 마음을 정리한 하루이기도 했다. 삶은 이렇게 일상의 틈에서 조금씩 방향을 바꾼다.


거창한 다짐보다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회복 중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회복 중이라는 말 속에는 멈추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앞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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