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젠지스테어라는 신조어에
대한 나의 생각

by 마부자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다가 ‘젠지스테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Z세대에게 어떤 말이나 질문을 건넸을 때, 대답 대신 아무 말 없이 상대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는 순간, 당황스러울 만큼 짧은 침묵 속에서 말이 오가지 않는 그 장면을 가리키는 신조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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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함이나 반항이라기보다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 채 선택한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고 했다.


이를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풀이하면 불합리하거나 불편한 상황 앞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조용히 바라보고 지나치는 태도를 말한다.


이 뉴스를 보고 처음엔 또 하나의 세대 규정용 단어처럼 느껴졌지만, 설명을 듣는 동안 묘하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뉴스에 출연한 전문가는 이 현상의 원인을 코로나 시대에 찾았다.


일상이었던 비대면, 최소화된 접촉, 마스크 뒤에 가려진 표정들로 인해 성장기의 아이들이 타인과의 대화를 충분히 갖지 못한 채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거리 두는 태도가 몸에 밴 결과라는 설명이었다.


그 말 역시 틀리지 않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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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니

이 젠지스테어라는 현상을

아이들만의 문제로 보기는 어려웠다.


또한 이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태도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가 만들어 온 하나의 생존 방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해도 바뀌지 않았던 경험, 나섰다가 책임을 떠안았던 기억, 질문하는 사람만 피곤해졌던 구조 속에서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조용히 바라보는 법’을 학습해 왔다.


젠지스테어는 그 결과물에 이름이 붙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 조직 그리고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불편함을 느끼고도 침묵을 선택해 왔는지를 떠올려보았다.


분위기를 깬다는 이유로, 유난하다는 시선을 받을까 봐, 혹은 그 다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우리는 말문이 막힌다는 말을 자주 해왔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쌓인 침묵은 어느새 개인의 성향처럼 포장되었지만 사실은 사회가 요구해 온 태도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 이 젠지스테어 현상을 특정 세대의 문제로만 설명하는 건 너무 쉬운 해석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히려 이 신조어가 지금 등장했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던 관망과 침묵이 이제는 이름을 얻을 만큼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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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붙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현상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건 세대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침묵이 안전한 선택이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젠지스테어를 설명하는 말은 많지만, 그 설명들만으로는 이 현상이 왜 이렇게 넓게 퍼졌는지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 젠지스테어라는 사회적 현상은 누군가의 태도를 고쳐야 할 문제로만 바라보는 순간, 또 다른 침묵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유를 묻기보다, 왜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더 안전해졌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말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대답이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신호, 침묵의 시간을 견뎌주는 문화일지도 모른다.


질문 앞에서 곧바로 반응하지 않아도 기다려주는 태도, 말이 정리될 때까지 재촉하지 않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런 작은 기다림이 쌓인다면, 젠지스테어는 고쳐야 할 문제라기보다 서서히 사라질 현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는 이 현상을 두고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여유를 허락하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게 된다.


말이 없는 시간을 불편함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그 또한 하나의 성숙한 사회적 감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요즘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내 생각을 오래 붙잡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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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그냥 넘기기 전에,

왜 불편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꼭 큰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일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젠지스테어라는 단어를 알게 된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이 현상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사회의 풍경이라면, 해결 역시 누군가의 성향을 바꾸는 데서 시작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말해도 괜찮았던 경험, 질문이 환영받았던 순간, 침묵하지 않아도 안전했던 기억이 조금씩 쌓여야만 이 풍경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해 본다.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해하려 애써보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주 작은 자리에서부터라도 한 번쯤은 고개를 돌려 말해보는 것.


그것이 이 오래된 사회현상 앞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지만 분명한 태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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