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처럼 흐린 하늘이었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마치 작은 방 안에 밀도 높은 공기를 가득 채워 놓은 듯 답답하면서도 묘하게 차분한 기운을 남겼다.
이런 날씨는 이상하게도 몸보다 마음을 먼저 눌러 놓는다.
어제 늦은 저녁, 포항에 있는 둘째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구로 올라오겠다는 말과 함께 차를 한 대 살 예정이니 함께 동행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얼마 전까지 타고 다니던 경차를 할머니께 드렸고, 출퇴근은 걸어서 해결해 왔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지난주 관사를 나와 인근 원룸으로 이사를 하면서 이제는 차가 꼭 필요해졌다는 말이었다.
늦은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아내와 셋이서 중고차 매매상가가 밀집한 곳으로 향했다. 아들이 생각해 둔 모델과 연식, 예산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그에 맞는 차를 차분히 찾아보기로 했다.
요즘은 워낙 중고차 매장도 신뢰도가 높아져서 딱히 함께 가서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이나 역할은 별로 없다.
그러나 누군가 그것도 가족이
동행한 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은 듯 했다.
늘 그렇듯 차를 보러 가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처음 마음에 두었던 차보다 조금 더 사양이 높은 차량이 슬쩍 시야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예상 금액을 말하면 영업사원은 거의 공식처럼 그보다 약 백만 원 정도 더 비싼 차를 보여준다. “이 정도만 더 보태면 훨씬 낫습니다.”라는 말은 늘 같은 톤으로 반복된다.
매매상가를 몇 군데 돌다 보면 처음엔 경차를 사러 왔다가, 어느새 중형차 계약서를 쓰고 돌아간다는 걸, 지난 30년간 영업을 해왔던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몇 번이나 처음 마음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필요한 만큼만, 지금의 생활에 맞는 선택이면 충분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도 처음엔 경차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최종적으로 계약한 차량은 준중형이었다. 그러나 금액은 예상 범위를 크게 넘지 않았고 무엇보다 본인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차를 고르는 내내 계산기를 두드리며 신중하게 고민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얼굴이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거액은 아니지만 차량가전액을 현금으로 이체하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한켠이 뭉클해졌다.
불과 몇 년 전, 대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했던 아이였다. 그 선택 앞에서 나는 걱정과 불안으로 밤잠을 설치곤 했다.
당시 나와 아내는 부모로서의 기준과 아이의 선택 사이에서 정말 많이 흔들렸고 수많은 걱정의 나날로 지새웠던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스물여섯이라는 나이에 홀로 독립해 어엿한 직업군인이 되어 자신의 번 돈으로 첫 차를 마련하는 모습은 그 어떤 말보다 단단한 답이 되어 주었다.
그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니 최소한 도망이 아니었음을 조용히 증명해 주는 장면이었다.
이전을 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 가입을 하던 중 경력이 없어 비쌀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나온 보험료 앞에서 잠시 모두가 멈칫했다.
그러나 아들은 잠시 계산을 하더니 이것 역시 현금으로 결제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은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카드로 하면 무이자 할부가 가능하다는 영업사원의 말에 아들은 담담하게 자신은 신용카드가 없다고 답했다. 군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도 있었겠지만, 신용카드 없이도 생활을 꾸려온 그 생활력이 놀라웠다.
작년까지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에서 생활했다는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에 기대지 않고 살아온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편리함보다 책임을 먼저 배운 아이처럼 보였다.
솔직히 그 모습은 자랑이라기보다 존중에 가까운 감정으로 다가왔다.
자식 자랑은 흔히 팔불출의 전유물이라 말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마음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부모의 보호 아래가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노동으로 삶을 꾸려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 말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종종 쉽게 단정된다. 참을성이 없다거나, 책임을 회피한다거나, 편한 길만 찾는다는 말로 묶이기 쉽다.
하지만 나는 오늘, 묵묵히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한 청년을 보았다.
누구보다 조용하고 단단한 방식으로 말이다.
내가 병을 겪으며 삶의 속도를 낮추게 되었듯, 아이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비교와 불안 대신, 선택과 책임이 존중받는 세상이라면 이들의 삶은 지금보다 조금 더 숨 쉴 틈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들의 차 계약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흐린 하늘은 여전히 같은 표정이었지만 내 마음의 밀도는 아침과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오늘은 회복의 기록이자,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는 조용한 확인의 하루였다.
이 시대의 젊은 청년들이 조금 덜 불안하고,
조금 더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조심스레 바라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