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았으면 술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것이다. 밤은 진했을 것이고 아침은 늘 흐렸었다.
숙취를 핑계로 하루를 미뤘고 정신은 늘 한 박자 늦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숙취 없이 몸을 일으켰다. 휴식 같은 휴일과 이른 잠이 만든 맑은 새벽이었다.
어두운 새벽의 공기는 고요했고, 머릿속도 드물게 정돈돼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현대 문명에 가려진 역사의 이면을 다루는 책을 펼쳤다.
사각의 프레임 밖을 보려는 시선으로 오늘은 ‘추정’이라는 단어를 곁에 두었다. 확신보다 여백을 허락하는 태도가 지금의 나와 맞았다.
오늘은 올해 들어 처음 인천에 가는 일정을 계획했다. 예년 같으면 한두 번쯤 어머니를 뵀겠지만, 올해는 그러지 못했다.
나의 투병이 이유였다. 어머니는 모른다. 또한 내가 움직이지 못하면 아내도 혼자 갈 수 없었다. 그 사실이 한 해를 조용히 인천에서 밀어냈다.
오래 이어온 모임의 송년회와 올해 대학에 입학한 막내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을 한데 묶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움직이길 바랐다.
예전엔 내 일정이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막내의 알바 일정이 우선이 되었고 우리는 그 뒤에 섰다.
아이들의 시간표가 우리 부부의 하루를 정하는 시기가 왔다는 사실이 묘했다. 다행히 막내가 오전 알바로 바뀌어 오후 두 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고 아내와 막내를 태웠다. 셋이 함께 차를 타는 일이 낯설 만큼 오래였다.
차 안에는 막내의 휴대폰에 연결된 노래가 흘렀고 흥얼거리며 차가운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차안은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휴게소에 자주 들러 두 사람의 입이 심심하지 않게, 나의 마음도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인천에 거의 다다르자 차는 밀렸지만 조급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어머니의 시간이 먼저 튀어나왔다. 훌쩍 자란 막내 손자를 보자 소리를 지르며 포옹했다.
그 장면 앞에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과 오랜만이라 더 커진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들면서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올 가을 나는 현충원에서 얼굴을 봤지만 아내는 1년만에 막내는 거의 2년만에 얼굴을 보시기에 잠시 그동안 못다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은 외식으로 정했다. 삼대가 한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었다. 어머니의 느린 젓가락과 막내의 빠른 식사, 그 사이에서 웃는 아내.
나는 그 풍경을 오래 바라봤다. 치료의 시간 동안 잃을 뻔했던 장면이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단단했다.
집으로 돌아와 무알콜 맥주 한 캔을 열었다. 취하지 않는 맥주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밤이 올 줄은 몰랐다.
어머니가 막내를 위해 챙겨주신 간식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셋이 나란히 앉았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하루의 온기가 천천히 식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 밤은 축하도 위로도 아닌, 그저 살아 있음이 자연스럽게 놓인 시간이었다. 술 대신 맑은 정신으로, 소란 대신 조용한 씹는 소리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잘 지나왔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밤이었다.
오늘의 회복은 가족의 형태로 다가왔다. 완치가 아니어도, 아직 길 위에 있어도, 나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125일째의 하루는 그렇게 나를 안심시켰다. 이미 돌아온 것들이 밤에 더 또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