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내가 비운 자리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들.

by 마부자


마음이 편안해서였을까. 어머니 댁이라는 낯선 잠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불면의 그림자 없이 밤을 건넜다. 몸이 잠든 것보다 마음이 먼저 내려놓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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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이후 처음으로, 잠을 견뎌내지 않아도 되는 밤이었고 아침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었다.


눈을 뜨니 이미 아침이었다. 어두운 새벽에 눈을 뜨던 시간표가 하루 쉬어간 느낌이었다. 주방에서는 언제 깨셨는지 모를 어머니의 손길이 분주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늘 그랬듯 집의 시간을 앞으로 밀어주는 신호처럼 들렸다. 그 소리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내와 막내를 깨워 네 사람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상 위에는 아침이라기엔 다소 과한 음식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과함’이 이 집의 기본값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 정성만큼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 아침은 설명이 필요 없는 위로였다. 건강을 묻지 않아도, 상태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냥 먹고, 씹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만으로 충분했다. 어머니의 식탁은 늘 이렇게 말없이 사람을 살게 했다.


저녁에는 친구들과 송년 모임이 있었다. 아내와 막내와 함께 외출을 준비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이 약속은 술을 전제로 움직이는 일정이었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었다.


투병 이전에는 이 모임에 참석할 때 늘 정해진 일정이 있었다. 친구 두 명과 아내 그리고 나, 그렇게 네 명이 먼저 만나 하루를 길게 쓰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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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전에는 항상 볼링장을 먼저 찾았다. 스트라이크보다 웃음이 많았고, 점수보다 서로의 컨디션을 먼저 살피던 시간이었다.


볼링이 끝나면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 약속 전까지는 당구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큐대를 잡은 손에는 자연스럽게 술잔이 함께 들려 있었고, 시간은 늘 계획보다 느리게 흘렀다.


그렇게 하루를 충분히 소모한 뒤 저녁 모임에 합류하는 것이 우리만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나의 투병으로 인해 지난 5월부터 그 일정은 멈춰 섰다. 누군가 말로 취소한 적은 없었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그 시간을 비워두었다.


몸이 회복되기 전까지, 그 하루는 자연스럽게 접혀 있었다. 그리고 오늘, 모처럼 그 일정대로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바쁜 시간들을 오전부터 비워 둔 친구들의 선택은 말보다 분명한 환영이었고, 회복을 축하하는 방식이었다.


오늘 그 자리에 한 명의 게스트가 더해졌다. 바로 막내였다.


오십견과 아직 돌아오지 않은 체력 탓에 볼링을 치지 않는 나를 대신해 막내가 그 자리를 채워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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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공을 들고 레인에 서 있는 막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 같은 것을 느꼈다. 아이의 성장은 늘 예고 없이 도착한다는 말을 그 순간에서야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내가 앞서서 공을 들고 서 있었고 막내는 뒤에서 점수판을 바라보며 웃던 자리였다. 그 장면이 너무 익숙해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한 발 물러나 있었고 막내가 아무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대신해 준다는 느낌보다 이미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사라진 자리를 누군가가 채웠다는 상실감보다 내가 비운 자리가 무너지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는 안도감을 더 크게 느꼈다.


아마 이것이 회복이라는 단어의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잠시 비켜섰던 시간 동안에도 삶이 멈추지 않고 잘 흘러가고 있었다는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막내의 뒷모습은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라 내가 지켜낸 시간의 결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의 볼링장은 경기장이 아니라 축하의 장소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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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다섯이 함께 볼링을 치고,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당구장을 거쳐 저녁 모임 장소로 향했다. 그 이동의 리듬 속에서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상의 한가운데에는 내가 아닌 막내가 서 있었다. 그 사실이 오늘의 회복을 더욱 선명하게 축하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평소와 다른 또 하나는 바로 내가 송년모임에 가면서 핸들을 잡는 다는 것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는 순간,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술을 마시지 않는 선택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았다. 모임으로 향하는 길이 그 어느 때보다 낯설었지만, 동시에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새로운 일상이기도 했다.


이 친구들과의 송년 모임에는 늘 규칙이 있었다. 여름에는 민어, 겨울에는 참치나 대방어. 제철 음식은 제철에 먹어야 한다는 말을 약속처럼 지키는 친구들이었다.


음식이 취향이 아니라 의식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올해는 그 규칙을 깼다. 투병 중인 나를 배려해 회를 건너뛰기로 했다. 며칠 전 병원에서 날음식을 허락받았지만, 예약 당시만 해도 나는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친구들은 그 사실 하나로 메뉴를 바꿨다. 몸은 대구와 인천이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늘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관계를 떠올릴 때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인 얼굴을 갖게 된다.


병문안으로, 전화로, 침묵으로 나를 지켜준 사람들이었다. 서울에 몇 번이나 병문안을 와주었고, 퇴원 이후에도 빠지지 않고 안부를 물었다.


가족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은 관계였다. 이른바 ‘00친구들’이라 불리는 이들과는 가족여행도 함께 다녔고,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고 지낼 만큼 가까웠다.


그런 친구들이 막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고등학교 입학 전이었다. 거의 3년 만의 재회였다. 어제 오후 어머니가 막내를 보며 했던 그 말 그대로, 친구들과 그들의 아내들의 얼굴에도 시간이 쌓인 표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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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씩 아내와 함께 들어오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러나 오늘의 반가움은 그 어떤 때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만남이었다.


투병 이후 처음 나를 보는 친구의 아내는 인사를 건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그 수준을 넘어 눈물이 고였다. 설명하지 않아도,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병은 한 사람에게 찾아오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군가는 멀리서, 누군가는 식탁에서, 누군가는 말없이 곁을 지킨다.


투병 이후 나의 하루는 늘 조심스러웠다. 몸의 신호를 먼저 살피고, 감정은 그 뒤에 배치했다. 그러나 오늘은 순서가 바뀌었다. 먼저 웃었고, 그 다음에 괜찮음을 확인했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깨닫는다. 회복은 병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라, 다시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오늘의 식탁과 오늘의 만남이 내게 그 증거였다.


나는 아직 치료의 기억 속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일상의 문턱을 넘고 있다. 퇴원 126일차의 기록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앞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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