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웃고 말하고, 괜히 농담을 주고받다 보니 몸이 먼저 지쳤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은 알람 없이도 늦게 눈을 떴다. 늦잠을 잔 죄책감보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라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다.
오늘은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병원도 아니고, 약속도 아니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계획도 없었다. 대신 어머니와 마주 앉아 그동안 미뤄두었던 이야기들을 천천히 꺼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예전 일, 요즘 드는 생각, 괜히 떠오른 사람들 이야기까지, 말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한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명확히 말씀드릴 수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연락을 자주 드리지 못했고, 찾아뵙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해 솔직하게 죄송한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말로는 담담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현실의 상황은 그럴 수가 없었기에 그 시간 속에 섞여 있던 미안함과 망설임은 생각보다 더 컸다.
어머니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여러 번 말씀해주셨다.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해해준다는 말이 오히려 더 마음을 눌렀다.
이해해주셨기에 더 죄송했고, 기다려주셨기에 더 미안했다. 병이라는 것은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막상 그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설명하면 걱정이 커질 것 같았고, 말하지 않으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 부담은 죄책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시 이렇게 마주 앉을 수 있음에 대한 책임감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대화는 지나간 시간을 완전히 지워주지는 않았지만, 앞으로의 시간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 늦었지만 필요한 말을 했고, 그 말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을 조금 덜 움켜쥐게 되었다.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건강한 안주와 무알콜 맥주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마셨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이 선택 하나에도 이유가 있다.
취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나누는 기분을 놓치지 않는 방법. 몸을 지키면서도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 그 균형이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이런 시간은 사진으로 남길 수도 없고, 기록으로 자랑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마음 어딘가에 단단히 쌓인다.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뜻깊었던 하루였다.
치료 이후의 삶은 큰 사건보다 이런 작은 평온을 알아차리는 연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한 날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