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있다면 꼭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글은 플랫폼의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러니 백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꼭 모든 글은 백업해 두시길 바랍니다.^^
본격적인 겨울의 찬 공기는 창밖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베란다 문을 여는 순간 공기는 성실하게 집 안까지 침투해 있었다.
바닥은 발바닥을 통해 지금이 겨울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잠깐의 외출 같지 않은 베란다로의 외출은 잠을 깨우는 데 충분했고 나는 다시 방으로 후퇴했다.
얼마전 주치의가 “이제 커피 드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해주었기에 이제는 차가 아닌 커피를 마신다. 그 말은 마치 내게 생활 복귀 허가서 같았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블랙커피 한 잔은 음료가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가는 첫 단추였다.차를 마시던 시절이 조심의 시간이었다면 커피는 회복의 신호였다.
괜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건강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1월의 새벽은 유시민작가의 책과 함께 공감이라는 주제로 시작되고 있다. 오늘은 공감의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어, ‘해석’을 붙잡았다.
이 단어는 작년의 나를 지금의 변화된 나로 가져오는 중요한 단어라는 생각을 했다.
서재의 창문으로 밀려드는 햇살을 뒤로하고 글을 쓴뒤 요약해 스레드에 올리려 접속했다. 그때 화면에 뜬 문장은 낯설고도 단호했다.
“계정이 비활성화 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은
해석이 필요 없는 문장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영어 문장은 나의 영어 실력을 정직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나는 해석을 챗GPT에게 맡겼다.
결론은 인스타그램은 스레드와 연동이 되기 때문에 지금 나의 인스타그램이 차단되어 스레드도 접속이 불가능하다는 냉정한 사실이었다.
당황한 나는 방법을 알아보고 재고 요청을 위해 얼굴 인증까지 마쳤다.
재고 요청 과정에서 얼굴 인증을 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 때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인지, 범죄 예방 다큐의 출연자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화면 속의 나는 너무 진지했고 그 진지함이 오히려 수상해 보일 정도였다. SNS 하나 하자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미 고개는 왼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소동의 시작은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인스타 계정이었다.열심히 쓰던 계정은 멀쩡한데, 놀고 있던 계정이 사고를 쳤다는 점이 가장 억울했다.
마치 회사에서 일은 안 하던 사람이 퇴사 사유의 중심이 되는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상황이 먼저 일을 벌였다.
인스타는 사실상 개설만 해둔 계정이었다. 게시물도 거의 없어 삭제돼도 큰 타격은 없었다. 문제는 작년부터 책 이야기를 올리던 스레드였다.
여름의 갑작스러운 투병으로 멈췄다가 올해 다시 시작하려던 공간이었다. 그래서 더 억울했고 더 이해되지 않았다.
왜 열심히 안 쓴 계정이 문제를 일으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인스타에 게시물을 마지막 게시물을 올린 것은 며칠 전 현재 읽고 있던 책의 한부분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신을 기다렸고 잠시 후 도착한 메일은 기대를 정확히 배반했다. “회원님의 계정은 영구 비활성화 되어 정보가 삭제됩니다.”
영구와 삭제는 언제 들어도 사람을 괜히 움츠러들게 한다.
인스타를 생활도구로 쓰고 있는 막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돌아온 대답은 더욱 짧고 강력했다. “영구 비활성화는 복구 방법이 없다네요....”라는 말이 오전을 정리했다.
블로그를 뒤지고 딸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결과는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챗GPT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묘하게 배신당한 기분도 들었다.
늘 내 편일 것 같던 존재가
이럴 때만 현실적인 친구가 된다.
오전 내내 컴퓨터와 씨름했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물론 한 달 만에 복구했다는 희망적인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내 경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 사건은 계정 문제가 아니라 내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연습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해석을 바꾸기로 했다. 기존 계정을 살리는 대신 새로 시작하자는 쪽이었다. 어차피 인스타도 비어 있었고 스레드도 초반 글들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모든 걸 새로 시작하라는 무언의 안내문 같았다.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 순간 오전 내내 짜증을 내던 나는 사라졌다. 대신 새로운 다짐과 신념, 그리고 조심성 많은 내가 등장했다. 사람은 역시 해석에 따라 다른 인물이 된다.
새 계정을 만드는 일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이것저것 배우며 첫 화면을 열었다.
팔로워 0명, 게시물 0개,
나름 게시물 하나 없는 SNS를 보니
마음이 오히려 깨끗해졌다.
첫 게시물을 올리기 전 잠시 멈췄다. 챗GPT의 조언이 떠올랐다. SNS는 확장 채널로만 쓰고 기록은 통제 가능한 곳에 두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한글 파일에 먼저 글을 쓴다. 그 다음 블로그와 브런치로 옮긴다. 혹시 모를 차단에도 글만은 남기기 위해서다.
다행히 나는 원본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겨도 글을 통째로 잃지는 않는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꽤 든든한 하루였다.
게시물 하나 없는 새 계정을 바라보며 괜히 마음이 맑아진 것도 사실이다. 아무것도 없다는 건 아직 실수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계정 하나는 사라졌지만 쓸 이야기는 오히려 하나 늘었다.
이런 날도 글 쓰는 사람에게는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