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기 시작했다. 손에 들자마자 이 책은 분명 내가 읽어온 책들 중 두께로는 상위권에 들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부담은 크지 않았다.
독서가 어느새 습관 비슷한 형태로 자리를 잡았고, 책의 두께에 먼저 겁먹던 시기는 이미 지나온 듯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임경선 작가에게 큰 영향을 준 저자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괜히 긴장감을 더했다.
괜히 자세를 고쳐 앉고, 첫 장을 넘기며 마음속으로 “이건 집중해서 읽자”라는 다짐까지 했다. 그렇게 시작한 책은 오늘 오후, 567페이지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두께에 비해 의외로 빠르게 도착한 종착역이라, 책장을 덮고 나서 잠시 멍하니 표지를 바라보았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는 오후에 시간을 따로 내어 서평으로 남겼다.
일기에는 감정을, 서평에는 생각을 나누는
나름의 분업 체계가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다만 이 책에서 가장 이색적으로 기억에 남은 부분은, 솔직히 말해 성에 대한 묘사 방식이었다.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자세를 바로잡고, 괜히 주변을 둘러보며 혼자 읽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성적인 행위에 대한 표현들이 예상보다 훨씬 적나라해서, 문학적 사유 이전에 당황이 먼저 찾아왔다. 차마 서평에는 쓰지 못했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 정도까지 자세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나는 문학 작품의 깊이와 의미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결론으로 스스로를 정리하며 책을 덮었다.
오늘의 독서는 성장이라기보다,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쪽에 조금 더 가까웠다.
오후에 서평을 작성하고 블로그 이웃 숫자를 바라보다가, 이 숫자가 언제부터 이렇게 존재감을 키웠는지 잠시 멍하니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청이 오면 반가웠는데, 요즘은 반가움과 함께 살짝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도 따라온다.
2023년 11월 21일, 25년 동안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던 인생 한가운데서 갑자기 일기를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생의 대전환을 꿈꾼 것이 아니라, 그냥 퇴근길에 생각이 많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회사 홍보용으로 쓰던 블로그에서 업무 글을 전부 내리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공간은 거의 혼잣말 수준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누가 읽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안 읽는 건 또 그것대로 조금 쓸쓸했다.
2024년 12월 18일, 서로이웃 300명이 되어
혼자서 꽤 오래 뿌듯해하며 일기를 썼던 날이 떠오른다.
그날은 숫자보다도 ‘이 정도면 나 혼자 떠드는 건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이 더 컸던 하루였다.
그리고 2025년 1월 3일, 서로이웃이 3,000명이 되었다는 숫자를 보고 잠시 화면을 다시 눌러봤다.
새로고침을 해도 숫자가 줄지 않는 걸 보며, 이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초창기에는 글을 찾아오는 분이 거의 없어서, 내가 먼저 이웃분들의 글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넸다.
그 시절의 나는 이웃 신청 버튼을 누를 때마다 작은 용기를 내는 성실한 독자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은 내가 추가한 이웃이 나를 추가한 이웃보다 두 배쯤 많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은근히 열심히 살고 있었고, 동시에 조금 애썼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웃 신청을 하면 그분의 글을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책임감이 생겼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어느새 숙제처럼 느껴지자, 마음속에서 작은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꽤 편협한 생각이었고,
그 시절의 나에게 살짝 손사래를 치고 싶어진다.
글을 읽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꼭 그렇게 빡빡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결국 나는 먼저 이웃 신청을 하지 않게 되었고, 대신 찾아와 주시는 분들은 기쁘게 맞이했다.
그 선택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나름의 균형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통계를 들여다보다가, 숫자의 방향이 조용히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먼저 이웃을 추가한 숫자보다, 나를 먼저 추가한 숫자가 더 커져 있었고 잠시 계산기를 두드려볼까 고민했다.
축하 케이크를 꺼낼 일은 아니었지만, 혼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굳이 손을 흔들지 않아도, 확성기를 들지 않아도, 조용히 글을 읽고 눌러준 ‘추가’ 버튼들이 쌓였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이웃신청을 해주신 분들을 세세히 들여다 본다면 나의 글을 읽어 주시는 분보다 어느 기업의 대표님들과 홍보 이사님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뒤 바뀐 이웃의 숫자를 알게 된 뒤로는 블로그에 들어올 때 괜히 자세가 바르게 된다.
슬리퍼 신고 마트에 가듯 글을 쓰던 태도에서,
양말은 신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이랄까...
이제는 대충 쓴 문장을 올렸다가, ‘이걸 읽고 이웃이 되신 분들이 계신데...’라는 생각에 한 번 더 읽어보게 된다.
문장을 고치면서 나 스스로에게 “그래도 이 정도면 성의는 보였지?”라고 슬쩍 물어보는 습관도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글이 훨씬 좋아졌느냐 하면, 쑥쓰럽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다만 예전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쓰지는 못하게 되었고, 혼잣말에도 약간의 매너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이상하게도 부담만 커진 건 아니다. 애쓰지 않아도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글이 제 갈 길을 알아서 가고 있다는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부담과 뿌듯함이 동시에 찾아오는 이 감정은, 마치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와 비슷하다.
숫자는 무섭지만,
그래도 매일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숫자를 잠시 덮어두고, 다시 문장 앞에 앉는다.
누군가는 조용히 읽고 지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말없이 이웃이 될 것이며, 나는 그 사이에서 계속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