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더 낮은 한파주의보에 이른 새벽 창밖의 어둠은 짙고 무거웠다. 공기는 마치 어둠의 사신처럼 창 앞에 서서 내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몸을 일으키기보다 먼저 마음이 움츠러들었고 오늘은 굳이 바깥과 싸우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토요일이었다. 밀어닥친 한파주의보를 핑계 삼아 어제 버리려 했던 재활용 쓰레기는 오늘도 현관 한쪽에 대기시키기로 했다.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데에는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이 붙는다.
오늘의 명분은 날씨였고
나는 그 명분을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웬만하면 일기에는 소소한 에피소드나 웃을 수 있는 장면을 적고 독서 이야기는 피하려 했다.
그런데 주말에는 운동도 쉬고 아직 배가 덜 고픈 하이에나들은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각자의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풍주의보와 한파주의보 문자가 하루 종일 울렸다. 그 알림들 사이에서 나는 먹고 읽고 다시 먹고 또 읽었다.
반복적인 하루였다.
그래서 오늘은 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전에 읽은 톨스토이의 단편동화 네 편을 엮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여운이 가시기 전에 동화 한 편을 더 읽고 싶어졌다. 블벗이신 별꽃님의 책꽂이에서 선물처럼 전해진 <걸리버 여행기>를 펼쳤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릴 적 책을 냄비 받침으로나 쓰던 사람이었다. 동화를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어린 왕자나 톰 소여, 인어공주 같은 이름만 알고 줄거리는 대충 짐작하는 정도였다.
내가 알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에 묶여 누워 있는 장면과 바다에서 배를 끌고 오는 장면이 전부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동화의 세계에 빠져보려 했다.
그런데 책 표지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동화책이 아닙니다.” 홍보를 위한 자극적인 문구라고 생각했다.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첫 장을 넘겼다.
초반은 내가 알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익숙한 장면 위에 낯선 감정이 겹쳐졌다.
웃어야 할 것 같은데 웃기지 않았고 가볍게 넘겨야 할 장면에서 자꾸 멈추게 됐다. 그때 다시 떠올랐다.
“이 책은 동화책이 아닙니다.”
그 문장은 경고였다. 걸리버 여행기는 정말 동화책이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제 읽은 톨스토이의 단편집과는 정반대의 감정을 남겼다.
철학책일 것 같았던 톨스토이는 따뜻한 동화였고 동화일 거라 믿었던 걸리버는 날카로운 현실이었다.
정치와 권력, 풍자와 비판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에게 보여주는 거울 같았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따로 서평에서 말하겠지만 간단한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내용을 이랬다.
걸리버는 항해 도중 난파를 당해 소인국에 도착한다. 거대한 몸집 때문에 처음엔 위협이 되지만 곧 국가의 ‘쓸모 있는 도구’로 취급된다.
전쟁의 명분은 달걀을 깨는 방향 같은 사소한 차이였고 권력자들은 그 사소함을 이유로 수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든다.
이후 거인국에서는 인간의 탐욕과 잔혹함이 조롱의 대상이 되고 학문과 이성이 극단으로 치달은 나라에서는 인간성이 배제된다.
말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인간이 가장 야만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여행이 거듭될수록 걸리버는 세상을 이해하기보다 인간을 혐오하게 된다.
줄거리를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이 이야기는 모험담이 아니라 인간을 해부하는 기록에 가깝다.
웃기려고 과장한 장면들 속에서 나는 자꾸 지금의 사회를 떠올렸다. 명분은 늘 그럴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욕망과 체면뿐인 모습들 말이다.
책장을 덮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300년 전 외국 작가가 자신의 시대를 비틀어 써 내려간 이야기가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과 이렇게 닮아 있을 줄은 몰랐다.
시대도 국경도 다른데 권력의 작동 방식과 인간의 태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묘하게 씁쓸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불편하기보다 통쾌했던 이유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시선이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채 권력과 대중, 제도와 인간의 어리석음을 차갑게 드러낸다. 웃음을 가장한 문장들 뒤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비판이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라 지금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에 오래 머물렀다.
누군가를 조롱하기 위해 쓴 이야기가 아니라,
반복되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경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독서는 마음을 데워주지는 않았지만, 생각의 체온을 낮추고 시선을 맑게 해주었다. 이런 통쾌함은 오랜만이었다.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해지기보다는 서늘해졌다. 한파주의보가 계속 울리던 오늘의 공기와 닮아 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동화라고 믿고 펼쳤다가 현실을 마주한 기분.
오늘의 독서는 나를 위로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이런 날도 필요하다고 일기장에 조용히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