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아직 어둠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새벽이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공기는 차가웠고 그 차가움 덕분에 오히려 생각은 또렷해졌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나는 늘 그렇듯 같은 자리에 앉았다. 이 시간에 하는 생각들은 유난히 과장되지 않는다.


변명도 적고 합리화도 덜하다. 그래서 새벽은 늘 불편한 진실을 데려온다.


10억이라는 숫자가 적힌 제목을 보고 선택한 책 속에 담긴 내 안의 불편한 진실을 깨우는 새벽. 책장을 넘기다 한 문장에서 멈췄다.

“만약 책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도 제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편하지 않은 것을 편하다고

믿으면서 살았을지 모릅니다.”


10억짜리 독서법 중에서 - 44page


착각.

1. 실제와 다르게 그릇되게 인식하거나 판단하는 것.

2. 보고 듣고 느끼는 과정에서 현실과 어긋난 인식이 생기는 상태.


사전적 정의를 읽으며 이 단어가 삶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착각은 실수보다 오래 남고 오해보다 깊다. 무엇보다 착각은 스스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가장 위험한 단어다.


나는 그동안 착각이라는 단어를 주로 타인의 판단 오류를 설명할 때 사용해왔다. 누군가를 보며 저건 착각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쉬웠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착각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꽤 정확하게 나를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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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믿음 자체가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독서를 통해 처음 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나를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30년을 영업이라는 직종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었다.


혼자 있는 시간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에너지를 준다고 생각했다. 인정받는 상황에서 더 잘 움직였고, 그런 나의 모습이 곧 나의 성격이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회복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만남 뒤에 찾아오는 피로감이 단순한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투병중에도 독서를 하며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외향적으로 살아가도록 훈련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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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환경의 요구였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가장 흔한 착각이다.


우리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활발해야 한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밝아야 한다.

잘해야 한다.


그 말들은 조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지침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침을 따르며 살아온 시간을 어느 순간 나의 성격이라고 부른다.


그 과정에서 진짜 좋아하는 것은 종종 밀려난다. 좋아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반복이 어느 순간 정체성처럼 굳어진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말 속에는 사실 이런 사람으로 살아왔다 라는 시간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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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이 지점에서 가장 단단해진다.

오래 살아온 방식이 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바쁜 삶이 나에게 맞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늘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안심이 되었고 멈추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바쁨을 능력으로 착각했다. 바쁜 내가 성실한 사람이라고 믿었고 바쁜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서를 통해 그리고 멈추는 연습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바쁨은 능력이 아니라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에게 맞는 속도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속도를 무시한 채 살아온 시간이 꽤 길었다는 것을.


그러나 가끔 착각은 나를 보호하기도 한다.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버거울 때 착각은 일종의 완충 장치처럼 작동한다.


나는 잘 살고 있다.

이게 나다.

이게 최선이다.

이런 믿음 덕분에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하루를 넘긴다.


그래서 착각은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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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착각은 삶을 견디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착각이 너무 오래 지속될 때다.


착각이 신념이 되고 신념이 정체성이 될 때 우리는 좀처럼 방향을 바꾸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책을 읽으며 문장 하나가 나의 정곡을 정확히 찌를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떠오른 감정은 깨달음보다 당혹감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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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나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나를 오해하고 있었을까?


그 질문 끝에서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착각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나의 익숙함에서 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신념이 된 착각은 교정되기 어렵다. 틀렸다는 증거보다 살아온 시간이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각을 깨는 순간이 찾아온다. 대개는 고통을 통해서다. 몸이 먼저 반응하거나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더는 이전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신호가 온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묻는다. 이게 정말 나였을까라고.


나에게는 투병이라는 고통의 시간이 그 질문을 앞당겨 주었다.


고통을 겪기 전에 혹은 고통을 조금 덜 겪기 위해 나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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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책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이게 정말 너의 생각이 맞는지, 이게 정말 너의 선택인지.


나는 이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다 무엇이 편안한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잘할 수 있는 것보다 오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려 한다.


이것이 전부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나에게 가까운 선택이라는 느낌은 든다.


오늘 새벽, 나는 착각이라는 단어를 다시 보았다. 이 단어는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알아차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나는 ‘착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착각은 무지에서 생기기보다 너무 익숙해져 의심하지 않게 된 삶의 방식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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