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새벽에 커다란 베란다를 통해 맞은 편 아파트의 창문들을 보고 있는 이 시간에만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낮에는 잘 나오지 않는 질문들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질문들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피하지 않기 위해 새벽에 책상 앞에 앉는다.
따뜻한 차는 그 질문들을 조금 덜 날카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익숙한 문장들 속에서 찾은 단어에서 느끼지 못했던 의미를 찾는 나의 머릿속은 무언가를 창조하듯 섬광이 지배한다.
그렇게 오늘은 '창조'라는 단어에 대한 글을 밝아 오는 붉은 새벽의 아침을 맞이하며 써내려 갔다.
이번 주 내내 집은 조용했다. 아이 하나가 여행을 떠난 뒤로, 집은 갑자기 말을 아끼는 법을 배운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 조용함은 하루 이틀 지나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매일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집에 혼자 있으면 이상하게도 말수가 늘어난다. 정확히 말하면 말을 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굳이 소리를 낼 이유도 없는데 괜히 한마디씩 던지게 된다.
이건 외로움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깝다.
“아무도 없네.”
이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본다.
대답이 없을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잠시 기다린다. 마치 혹시라도 집이 대답할까 봐.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말은 한 번 더 이어진다.
“진짜 아무도 없네.” 이쯤 되면 혼잣말이 아니라 혼자서 회의까지 열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혼잣말은 외로움의 증거라기보다는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여기 있고, 지금 이 시간을 혼자 쓰고 있다는 표시. 조용한 집 안에서는 그 표시가 의외로 중요해진다.
혼잣말을 하다 보면 말의 내용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저 소리가 공기를 흔들고 그 흔들림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과정이 중요하다.
누군가의 반응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이 과정은 꽤 마음에 든다.
그렇게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괜히 집 안을 한 바퀴 더 돌고 나면 하루가 꽤 많이 흘러간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한 일은 많지 않은데 피곤은 성실하게 쌓여 있다.
밤이 되어 하루를 정리하려고 앉으면 이번 주 내내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오늘 뭐 했지?’
이 질문은 반성이 아니라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는지 확인하는 절차에 가깝다.
막상 떠올려보면 아주 특별한 일은 없었다. 혼자 집에 있었고, 책을 읽었고, 운동을 했고,말 걸 사람이 없어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피곤했다.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몸은 분명 하루를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몸은 거짓말을 잘 못 한다. 특히 금요일 밤에는 더욱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럴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 아무 사건도 없었던 일주일도
사실은 꽤 많은 선택과 판단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걸.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순간들, 굳이 나서지 않기로 한 판단들, 말을 아끼고 대신 혼잣말로 채운 시간들까지 포함해서 이번 주는 조용히 완성되었다.
이제 예전처럼 불금이라는 단어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통과했다는 표시로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