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금니를 교체하기 위해 치과를 찾았다. 기존 금니 중 하나가 신경이 많이 손상되어 오늘은 마취를 하고 신경치료를 먼저 하기로 했다.
치료 자체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고, 마음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치과 방문은 치아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워질 수 있는지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치료대에 누워 마취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옆 치료대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그전에 한가지 말할 것은 동네에 많은 치과가 있지만 내가 이 치과를 선택한 이유는 의사와 간호사 분들이 너무 친절하기 때문이다.
낯설고 차가운 치료대에 누워 있으면 의도하지 않아도 타인의 말이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할아버지 한 분께 단호한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알던 그 의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지금 틀니가 문제가 아니라 입천장에 이상이 보인다고, 큰 병원에 가서 반드시 확인을 받으시라는 그 말에는 의료인의 책임감과 조급함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의사가 격앙되어 보였던 이유도 이해가 갔다. 이미 몇 달 전 소견서를 써주었는데, 어르신이 큰 병원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의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혹시라도 늦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 순간 ‘큰 병원’이라는 말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 내 가슴도 함께 내려앉았다. 그 말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갑자기 바꾸는 신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년 5월, 나 역시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비슷한 표정으로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어르신의 입장이 떠올랐다. 아마도 틀니가 불편해서 병원에 왔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큰 병원’이라는 단어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쉽게 상상이 갔다.
모르고 싶었던 이야기를 갑자기 마주해야 하는 순간의 당혹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뒤, 할아버지의 아내 즉, 할머니가 치료실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실 두 분이 함께 병원에 왔는데 할머니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할아버지 혼자 치료실에 들어오셨다는 것이었고 할머니는 남편이 후두암이라는 말을 전했다.
할머니의 입에서 ‘후두암’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치료실의 공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 단어 하나가 가진 무게 때문이었다.
지난 번 소견서를 받고 이미 큰 병원에 다녀왔고,
항암치료를 열두 번이나 받았다는 말속에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다 말하지 못했을
시간과 견뎌온 날들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아, 이분들은 이미 아주 긴 시간을 건너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남편이 암 진단을 받고 난 뒤부터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며 대답을 안해서 아무도 모른다고...”
그 순간, 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 마음이 어쩌면 가장 아픈 증상일지도 모른다.
고통을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가족을 보호하려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하던 할머니가 치료실에서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 울음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참아온 말들, 버텨온 시간들,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걱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울음이었을 것이다.
그 장면을 들으며 나는 녹색 천 아래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나를 치료하는 의사도 간호사도 함께 울었던 것 같다.
그분들의 사연이 특별하기도 했지만, ‘암’이라는 단어가 가진 공포와 그 이후에 따라오는 침묵의 시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사정을 알았다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했을지도 모른다는 미안함, 의사로서 놓친 것 같다는 자책.
그리고 여전히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를 빠르게 계산하는 표정 그는 그 자리에서 의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찾고 있었다.
결국 의사는 틀니를 다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겠다고.
그 말은 치료의 약속이자 그 부부에게 내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손이었다.
치과라는 공간에서 나는 오늘 세 사람의 마음을 동시에 보았다.
말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마음.
대신 말해주다 무너진 할머니의 마음.
그리고 책임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의사의 마음.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지나며 ‘암’이라는 단어가 다시 한 번 내 안에서 조용히 울렸다.
그 단어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리다가도 순식간에 나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오늘은 치아를 치료하러 갔다가 마음이 먼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그날의 치료실은 치과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잠시 멈춰 서 있던 공간이었다.
오늘 치과에서 흘렸던 눈물은
치과의 통증 때문이기보다는
한 사람이 아픔을 견뎌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느껴진 마음의 통증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오후 두 시에 병원에 들어갔다가 네 시가 다 되어 나왔다. 시계는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음은 하루를 다 써버린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책을 펼칠 수도, 글을 이어갈 수도 없었다.
오늘은 무언가를 해내는 날이 아니라
그저 감정을 그대로 두는 날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일기는 이쯤에서 멈춘다.
더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