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대회에 참가하는 아내를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이 아닌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오전의 공기가 생각보다 느슨했다.
며칠동안 거센 힘자랑을 했던 겨울이 잠시 힘이 빠진 건지, 아니면 내가 둔해진 건지 애매한 온도였다. 그 애매함이 문제였다.
나는 늘 애매한 날씨 앞에서 과잉 대응을 한다. 패딩을 꺼내 입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오늘도 내 몸은 계절보다 보수적으로 판단했다.
정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알았다.
음...오늘은 패딩의 날이 아니라는 것을.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목덜미가 먼저 항의했다. 땀이 날 준비를 하는 신호였다.
그래도 나는 태연한 척 걸었다. 이미 나온 이상, 오늘의 판단 오류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옷을 잘못 입은 사람은 돌아가는 순간 패배자가 된다.
걸을수록 체온은 올라가고 마음은 조금 민망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 옷차림이 하나같이 가벼워 보였다. 나만 혼자 겨울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 같았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차에서 내렸을 때, 다시 집으로 올라가 바꿔 입고 나왔으면 될 것을. 꼭 몸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쳐야 후회를 하게 된다.
몸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커피를 주문하려 잠깐 카페에 들렸다. 평소에는 직원에게 직접 주문했지만 오늘은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을 보며 키오스크 앞으로 다가갔다.
요즘 세상에서 키오스크는 선택이 아니라 시험이다.
화면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프기 전에는 아아를 마셨지만, 이제 우유를 두유로 변경한 까페라떼를 마신다. 그런데 낯선 화면위에서 내 손가락을 길을 읽고 맴돌았다.
버튼은 갑자기 낯선 외국어처럼 보였다. 게다가 잠시 후 뒤에 사람이 있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패딩을 입은 자격지심이 더해져서 였을까.
그 순간부터 나는 커피를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압박을 견디는 사람이 됐다. 메뉴를 고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끌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나는 가장 안전해 보이는 아아 버튼을 눌렀다. 이름도 길지 않고 설명도 짧은 메뉴. 키오스크 앞에서는 철학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결제를 마치고 한 발 옆으로 물러나며 생각했다.
나는 왜 늘 키오스크 앞에서 이렇게 바보가 되는 걸까.
집에서는 복잡한 생각도 잘만 정리하면서, 화면 하나 앞에서는 갑자기 인간의 기본 기능을 잃는다.
아마도 나는 기계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쪽에 아직 미련이 있는 세대라고 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며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와 신호등 앞에 섰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옆과 건너편에 함께 서 있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각자가 자기 방향만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시선은 흩어져 있었지만 공기는 하나로 묶여 있었다. 마치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방식으로 의식하고 있는 듯한 순간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몸짓을 보게 된다. 누군가는 발끝을 가볍게 까딱이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고 누군가는 정말 땅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같은 신호를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태도는 이렇게 다르다. 그 모습들이 문득 각자의 삶을 압축해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느새 옆 사람의 리듬에 맞춰 서 있었다. 의식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이 사람을 따라가겠다는 의지도 없고, 함께 가야 할 목적지도 없는데 몸은 이미 같은 박자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인간은 혼자라고 말하지만
사실 완전히 혼자인 순간은 거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늘 누군가의 속도에 영향을 받고, 누군가의 방향에 잠시 몸을 맞춘다. 그것이 친밀함이 아니어도, 관계라고 부르기엔 너무 짧아도 말이다.
신호등 앞에서는 모두가 잠시 같은 인생을 산다. 같은 시간에 멈추고, 같은 신호에 출발한다.
그 짧은 합의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사정도 모른 채 같은 선택을 한다. 어쩌면 삶의 대부분도 이런 순간들의 연속인지 모르겠다.
길고 깊은 동행보다,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리듬을 나누는 짧은 공존이 더 많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 신호등 앞에서 다시 한 번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패딩을 벗어 한 손에 들었다. 처음 나올 때보다 마음도 몸도 한결 가벼웠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왜 나왔지? 딱히 할 일도 없었고, 꼭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 외출은 충분했다.
과하게 입은 패딩도, 키오스크 앞에서의 당황도, 신호등 앞의 동조도 하나같이 사소했고 그래서 더 즐거웠다.
나는 오늘 또 확인한다. 하루는 거창해서가 아니라 이런 어설픔 덕분에 기록할 만해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