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니돈내산 독박투어’라는 여행 예능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가장 많이 마주치는 장르가 여행이다.
여러 패널들이 짝을 이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명 관광지나 숨은 명소를 소개한다. 먹고, 걷고, 구경하고, 웃는다.
사실 나는 타인이 먹고 놀고 있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데 큰 흥미를 느끼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 프로그램을 일부러 챙겨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조금 다르다. 웃음이 있다. 억지로 만들어낸 웃음이 아니라, 돈을 직접 쓰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사람 냄새 같은 웃음이다.
그래서 가끔은 아내 옆에 앉아 같이 보게 된다.
요즘처럼 웃을 일이 줄어든 하루를 살다 보면, 이런 소소한 웃음조차 없으면 세상이 너무 팍팍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그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착각에 잠시 기대어 산다.
어제도 아내와 이른 저녁을 먹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패널들이 외국의 식당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흘러가고 있었다.
화면 속 음식은 정성스럽게 찍혀 있었고, 표정들은 과장되게 행복해 보였다. 그때 갑자기 아내가 말했다.
“내가 나이를 먹나 봐.”
나는 별 생각 없이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아내는 잠시 화면을 보다가 말했다.
“요즘 TV에 나오는 음식들 있잖아. 특히 외국 음식들. 예전처럼 그렇게 맛있어 보이지도 않고, 엄청 특별하다는 생각도 안 들어. 가만 보면 저런 음식들 우리나라에서도 먹을 수 있는 데가 많은데, 꼭 저렇게 나가서 먹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나는 딱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웃으며 말했다.
“글쎄, 그게 나이 먹는 거랑은 관계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대화는 짧게 끝났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으니 아내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 역시 요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 감정은 ‘나이를 먹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걸까. 단순히 입맛이 변한 걸까. 아니면 설렘이 줄어든 걸까.
답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생각은 자연스럽게 며칠 전으로 흘러갔다.
얼마 전 일본 여행을 다녀온 막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일본에서 라멘도 먹고, 카츠도 먹고, 이것저것 많이 먹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같은 음식은 한국에서 먹는 게 더 낫더라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웃으며 넘겼다. 여행의 여운을 깨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과 막내의 말이 묘하게 이어져 있었고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 특별함이 사라졌다는 감각.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나이나 입맛의 문제 라기보다 시대의 문제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대리 경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에는 직접 가야만 볼 수 있었던 풍경과 맛을, 이제는 누군가가 대신 가서 보여준다.
텔레비전과 유튜브 속 사람들은
우리 대신 세계를 돌아다니고,
우리 대신 먹고, 우리 대신 감탄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 맛이 어땠는지, 어떤 향이었는지, 심지어 집에서 만드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와 거의 비슷한 맛을 낸 제품이 편의점과 마트에 진열된다.
더 나아가 이제는 전 세계 어느 나라 음식이든, 우리나라 번화가에 가면 전문점 하나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가보지 않았는데 본 것 같고, 먹어보지 않았는데 맛을 아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산다.
그러니 막상 화면 속 음식이 예전만큼 새롭지 않은 것도, 외국에서 먹는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함이 생기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것은 나이를 먹어서 생긴 무뎌짐이 아니라, 너무 많은 대리경험과 대리만족을 통해 알아버린 시대의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어떤 경험이든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특별했다.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기대를 만들었고, 알지 못함이 감정을 부풀렸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험이 너무 많아서 느끼는 법을
잊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아내가 말한 의미는, 결국 음식이나 여행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장면들이 너무 잘 정리된 상태로 우리에게 도착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 속 먹방과 여행은 실패도, 망설임도, 어설픔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미 편집된 감정, 이미 정답처럼 포장된 경험만이 화면을 채운다.
우리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감탄하기보다 평가하는 사람이 된다. 저기는 어떤지, 저건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떤지,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하나 같은 생각들이 먼저 떠오른다.
설레기 전에 이미 판단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감이 생기기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먼저 주어진다.
또 한 가지는, 그 경험들이 더 이상 ‘나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남의 여행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가볼 수 있겠다는 상상이 따라붙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장면이 이미 충분히 소비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대신 경험해준 사람의 기록을 보며 만족하거나,
때로는 거기서 감정이 멈춰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화면 속 풍경과 음식에 설레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설렘을 대신 살아주는 방식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대신 본 것, 대신 느낀 것에 길들여진 감각은 직접적인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다. 결국 아내가 말한 감정의 변화는 무관심이 익어 성숙의 막바지 단계에 왔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남이 만든 장면보다, 내가 직접 겪을 수 있는 크기와 속도의 경험을 더 소중하게 느끼는 단계에 들어선 것.
그래서 오늘 우리는 텔레비전 속 여행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고,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한마디는 그렇게 오늘 하루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 말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속도를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