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4.지난주와 달리 웃고 돌아온 치과 치료의 순간

by 마부자

주일 내내 몰아친 한파로 방콕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버린 나에게, 요즘 유일하게 강제 외출을 시키는 일정이 하나 있는데 그 것은 바로 치과다.


세상에 수많은 약속이 있지만, 이 약속만큼은 미루지도,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치과는 선택이 아니라 마치 집행하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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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기 전, 나는 잠시 옷장 앞에서 서성였다. 지난번 날씨를 너무 햇살을 무시했다가 두꺼운 패딩을 입었다가 자격지심에 땀흘린 겨울을 잠시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얇은 패딩을 입고 갈까? 생각했지만 연이어 날아오는 한파 문자들을 읽으며 나 자신을 다시 믿어보기로 하고 롱패딩을 꺼내 입었다.


오늘의 나는 지난날은 잊고 순간의 선택을 존중하는 인간이었다.


공동현관을 나서는 순간,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마치 “그래, 이번엔 네가 맞았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바람은 내 선택을 증명해주듯 나를 뒤로 밀어붙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롱패딩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건 옷이 아니라 생존 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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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 도착해 지난주 신경치료 후 임시로 해두었던 치아를 제거하고, 남은 치료를 위해 마취를 했다. 의자에 누워 대기하는 시간은 늘 묘하다.


문득 지난주에 치료보다 더 아프게 했던 그 어르신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암에 걸렸다는 말을 담담하게 전하시던 그 할머니와 의사선생님의 대화.


임시치아를 제거하던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지난번 그 어르신은 어떻게 되셨어요?”


간호사는 웃으며 말했다. 다른 곳에서 했던 틀니를 가져오셨는데, 다행히 손질을 잘해서 문제없이 치료하고 가셨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간호사도, 나도 잠시 같은 마음이 되었던 것 같다. 치과에서 이런 안도감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 치과는 아프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마음이 덜 아파서였는지 오늘은 치료도 아프지 않게 일찍 마쳤다. 다음 주 일정을 다시 예약했고 아직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잠시 잊고 있었던 통증이 밀려오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했다. 어차피 나온 김에 그냥 들어가기엔 오늘의 외출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나온 이상 찬바람이라도 콧구멍에 좀 더 넣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동네 공원에 들렀다. 한파 속 공원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그런데 거기서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


이 추운 날에 산책이라니, 대단하다 싶었는데 곧 깨달았다. 나도 지금 산책 중이었다. 이럴 땐 남을 판단하면 바로 나에게 되돌아온다.


벤치에 잠시 앉아 강아지를 바라봤다. 날씨와 상관없이 강아지는 목줄을 달고 분주하게 주변을 맴돌았다. 추위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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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우리 둘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웃었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강아지도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마치 “그래, 오늘은 너도 나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짧은 순간, 우리는 꽤 괜찮은 사이가 되었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서로의 사정도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강아지와의 눈맞춤은 늘 편하다. 설명이 필요 없고, 오해도 없다. 인간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통째로 생략된다. 그래서 그 짧은 교감이 괜히 마음을 풀어주는 것 같다.


말이 없어서 더 정확해지는 순간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짧은 외출은 치과로 시작했지만, 결국 강아지와의 눈 맞춤 덕분에 조금은 덜 차가운 산책이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한파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늘 거창한 데 있지 않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웃음의 최소 단위로 하루를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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