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아직 아침이라 부르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밤의 기운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새벽의 공기가 베란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창밖은 조용하고 차가우며 세상은 아직 말을 아끼는 얼굴이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차 한 잔을 준비해 책상 앞에 앉는다.


오늘도 여전히 속도를 내지 않기로 했다. 한 문장에 머물기로 마음먹은 날이기 때문이다.이번 한 주를 위해 다시 꺼낸 책은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이다.


새벽의 책과 사유를 통해 성장하는 법, 공감하는 법, 기록하는 법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제 읽고 쓰는 법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글을 쓰기 위해 읽어야 한다는 제목과 함께 나의 시선을 잡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책읽기는 진정 즐겁고 행복한 일이기도 합니다.

비로소 알게 되고,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되고, 자유롭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비늘이 덮여 있습니다. 경험이라는, 편견이라는, 이미 알고 있다는….


좋은 책은 바로 그 비늘을 벗겨줍니다.”

책 읽기 부터 시작하는 글 쓰기 중에서 - 19page



편견.

1. 사실이나 충분한 근거 없이 미리 정해 놓은 판단이나 생각.

2. 대상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사고의 기울어짐.


독서량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읽는 방식에 꽤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책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기준, 이 정도면 이해했다는 조급한 결론, 저자의 말을 곧장 나의 생각으로 가져와도 된다는 안일함 같은 것들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새벽에 짧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문장은 이렇게 해석해야 하고 이 장면은 이런 의미일 거라는 확신을 너무 빨리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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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나를 점령하는 순간이다.


나는 독서를 통해 편견을 깨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사실은 독서 안에서조차 편견을 재생산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편견을 드러내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나는 편견을 더 깊이 묻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편견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 차가운 새벽의 아침을 시작하기로 했다.


사전적 정의를 읽는 동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이 설명 속에 내가 너무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편견의 의미는 사실 단순하다. 미리 판단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삶 속에서 편견은 훨씬 정교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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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경험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난다.


살아봤다는 말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이제 다 안다는 태도로 얼굴을 바꾼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보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 확인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사람을 빨리 파악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몇 마디 말만 들어도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고 몇 번의 장면만 보면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판단은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점점 나를 단단하게 굳혀가며 세상을 단순하게 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런 감정의 영역에서 편견은 두려움과 닮아 있는 것 같다. 모르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말이다.


확실하지 않은 채로 머무는 것이 불안해서 서둘러 결론을 내버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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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빠른 안정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안정은 성장이 아니라 정지에 가깝다.

사실 편견은 나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를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투병의 시간 속에서도 나는 여러 겹의 편견을 만났다. 병에 걸린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픈 사람은 담담해야 한다며 기준을 잡으려 했다.


그 틀에서 벗어나는 감정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겼다. 불안하면 안 되는 것 같았고 두려워하면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아픔 앞에는 정해진 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해야 한다는 것도, 잘 견뎌야 한다는 것도 대부분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 즉, 편견이라는 것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실천의 차원에서 편견을 다룬다는 것은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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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 조금 늦추는 일이다.

모른다는 상태를 조금 더 견디는 연습을 하면 된다.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질문을 하나 더 남겨두는 태도는 책을 통해 그 연습을 가능하게 한다.


좋은 책은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생각을 머물게 한다. 나는 그 머뭇거림 속에서 비로소 나의 시선이 얼마나 급했는지를 알아차린다.


이권우 작가는 글에서 눈의 비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 비늘은 누군가 씌워준 것이 아니라 대부분 내가 스스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경험과 상처라는 명분으로 때로는 이미 알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나는 내 눈을 가리고 있으면서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편견을 벗긴다는 것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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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덜 확신하는 사람이 되는 일에 가깝다.


단정하지 않는 태도와 결론보다 질문을 먼저 꺼내는 마음이 독서와 글쓰기를 함께 이어가며 내가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자세다.


다른 말로 하면 생각을 완성하기보다 열어두는 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확신보다는 망설임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된다.


이해했다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읽고 안다고 말하기 전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린다.


그것은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세상을 한 가지 시선으로만 재단하지 않으려는 연습에 가깝다.


열어둔 생각은 불편하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고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나는 다시 책을 읽고 문장을 고쳐 쓰며 다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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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독서와 글쓰기는

나를 더 똑똑하게 만들기보다

더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편견은 언제나 완성된 생각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더 볼 필요 없다는 태도와 더 들을 필요 없다는 확신.


그래서 나는 이제 생각을 완성하지 않으려 애쓴다. 대신 열어둔다. 질문이 머물 자리를 남겨둔다.


그 틈에서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책은 나에게 새로운 지식을 더하기보다 오래된 확신을 흔들어준다. 그 흔들림 덕분에 나는 다시 보고 싶어진다.


다시 읽고, 다시 쓰고 다시 묻고 싶어진다.


나는 ‘편견’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편견이란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복잡함을 버린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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