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가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두 달 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에 작은 결절이 있다는 소견을 받았고, 오늘은 담당의와 상담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아내에게 큰 이상이 있었다면 바로 연락이 왔을 거라고 별일 아닐 거라며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이 얼마나 얇았는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두 달을 기다려 만난 의사는 우리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결과 설명 대신 세침검사를 받아야 하니 오늘은 다시 예약만 하고 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말이 끝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두 달을 기다려 왔는데 다시 검사를 예약하라고 했다.
더 황당한 건 세침검사 일정이 밀려 있어 넉 달 뒤에나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기다림 위에 또 다른 기다림을 얹어 놓는 말이었다.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수백만 원을 들여 받은 검진 결과에 이상 소견이 있는데, 정확한 판단을 받기까지 반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간호사가 들어와 대신 설명을 했고, 복도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병원 관계자와 별도로 상담을 했다. 그리고 긴 실랑이 끝에 얻은 것은 검사 일정은 조금 앞당긴 것이었다.
문제는 해결됐지만 마음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늘 하루의 기운은 이미 그곳에서 다 소진된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병원 생각에 정신이 팔린 채 운전을 하다가 늘 다니던 길에서 접촉사고가 났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고, 요즘답게 사고 당사자끼리 길게 말 섞을 일은 없었다.
블랙박스와 시스템이 알아서 판단을 내려줬다. 다행히 다친 사람도 없었고, 차량 파손도 경미했다.
사고는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됐다.
아내는 액땜했다고 말하며 담담하게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마음과 몸이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사고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였다.
"오늘 병원에서 우리가 쏟아낸 화가, 다른 형태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것 같아, 그냥 조용히 잘 이야기하고 올걸 그랬나..."라고 했다.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당신들이 잘못되었다고, 부당하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쌓아 올린 말들이 사실은 누군가를 향한 화였다는 걸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나는 그 화가 정당하다고 믿고 있었다.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이었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항의였고, 시스템에 대한 분노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은 그 모든 이유를 지나 바로 본질로 향했다.
화는 이유를 달고 있지만,
결국은 에너지라는 것이며,
어디론가 던져지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방향을 바꿔 돌아온다는 것.
오늘의 접촉사고가 벌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너무 단순한 인과다.
다만 하루 종일 쌓아 올린 날선 마음이, 가장 약한 틈을 찾아 흘러나온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병원에서 이기고 싶었다.
설명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최소한 이해받고 싶었다. 그래서 화를 선택했다.
화는 가장 빠른 표현이니까. 가장 즉각적인 반응이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남은 것은 해결된 일정 하나와, 정리되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아내의 말은 나를 탓하지 않았고, 상황을 단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내 안의 상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 이유는,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해서가 아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방식이,
꼭 좋은 방식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화는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고, 하루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오늘의 사고는 그 사실을 눈에 보이게 드러낸 장면이었을 뿐이다.
아마 다음에도 나는 화를 낼 것이다. 완전히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이후로는, 화를 내기 직전 한 번쯤은 이 장면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누군가에게 던진 감정은, 반드시 나를 지나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
오늘 나는 그 말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