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7.머리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따라오지 못한 날.

by 마부자

새벽의 어둠은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지만, 창밖의 바람은 오히려 기세를 더했다. 겨울은 아직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재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노크가 아니라 항의에 가까웠다. 동장군은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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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순순히 흘러가지는 않겠다는 예감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뜨거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책상에 앉았다. 새로운 한 주를 여는 나만의 의식 같은 시간이다.


‘치유’라는 단어를 적어두고 잠시 멈추었고 그렇게 나만의 새벽을 열었다. 이 시간만큼은 세상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된다.


이번 주 두 번째 외출은 치과병원이다. 오전 첫 진료를 예약해 두었기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신경치료는 이미 끝났고, 오늘은 본을 뜨는 간단한 과정만 남아 있었다. 치료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몸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어제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에 대한 정리를 시작했다. 아내의 세침검사를 앞두고 기존 병과에 전화를 했다.


검사 과정에서 출혈이 예상되기 때문에 아스피린 계열의 약을 줄여도 되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돌아온 답은 익숙했다. 전화로는 안내할 수 없고, 본인이나 대리인이 직접 접수해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는 말.


사실 좀 화도 났지만, 안전이라는 중요한 과정이기에 절차를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당일 예약이 가능해 다시 외출복을 입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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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설명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했다.


5일 정도는 약을 끊어도 되지만, 약을 끊을 경우 뇌경색이 올 가능성이 있으며, 그로 인한 부작용은 환자의 책임이라는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술을 위해 약을 중단해야 한다면, 시술을 담당하는 의사와 다시 상의하라는 조언.


나는 그 말을 그 순간 더 긴말을 하지 않고 ‘잠시 중지해도 된다’는 문장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단 한 문장도 틀린 말이 없으니까.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한다.


의사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너무 정확해서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서는 한숨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이해는 했지만 편안해지지는 않았다. 이해와 수긍은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는 이미 고개를 끄덕였는데, 마음은 아직 그 자리에 서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불안은 줄어들기보다 형태를 바꿔 남았다. 이제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진 느낌이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모든 개인의 사정에 맞춰 규칙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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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많은 사람을 동시에 다뤄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서사는

종종 요약되거나 생략된다.


누군가에게 예외를 허용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는 말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머리로는 이미 여러 번 정리한 논리다.


그런데도 어제와 오늘 병원에서 겪은 일련의 장면들은 계속 질문을 남겼다.


규칙이 옳다는 사실과, 그 규칙 안에서 느끼는 감정이 정리되지 않는 이 간극은 어디서 해소되어야 할까.


환자는 설명을 듣는 존재로만 남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설명 이후의 불안까지도

각자의 몫으로 감당해야 하는 걸까.


이 시스템 안에서 환자는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 존재일까.


기다림을 견디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절차를 따르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두려움과 망설임, 말로 다 하지 못한 질문들까지 스스로 정리해야 하는 순간에는 문득 고립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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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과 책임이라는 말 뒤에 남겨진 감정은 누가 돌봐야 할까.

그 감정은 어디에도 접수되지 않는다.


번호표도 없고, 상담 창구도 없다. 그냥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버티며 스스로 다독여야 한다.


아마 이 질문들에는 당장 답이 없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질문을 남기고, 글로 꺼내놓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답답함은 그렇게 다시 문장 속에 남기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제 접촉사고는 나의 과실로 판명되었다.


이미 알고 있던 결과였다. 자잘한 비율을 따지며 더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저 빨리 정리해 달라고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도착하니 정비업체에서 차를 픽업하러 왔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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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부위가 말끔히 수리되어 흔적이 남지 않듯이

나의 기억도 함께 수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어제와 오늘이 하나의 긴 하루처럼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제의 연장선 위에서 오늘이 마무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그렇게 정리의 하루였다. 병원의 말들,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 끝난 사고와 남은 피로까지. 어제의 모든 일들이 오늘 안에서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치유라는 단어는 아마 이런 과정일 것이다.


무언가가 좋아지는 순간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고 정리하며 다시 책을 펼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오는 것.


오늘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전 26화0126.내뱉었던 화의 말들이 사고로 돌아온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