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날씨는 추웠다. 어제와 그제 남겨진 우울한 기운이 몸 안 어딘가에 그대로 눌어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날은 가만히 있으면 생각까지 함께 얼어붙는다. 집 안에서 계속 머물다 보면 우울이 이불처럼 덮일 것 같아, 오늘은 일부러 집 앞 안심습지로 산책을 나섰다.
기분이 좋아서 나가는 산책이 아니라, 기분이 더 나빠지기 전에 급히 막아보려는 외출이었다.
안심습지는 1년 중 가장 황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쓰러진 연꽃들은 마치 역할을 다 마친 배우처럼 땅에 누워 있었고, 색을 잃은 풍경은 ‘계절의 휴식기’라는 말을 너무도 성실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끝났다고 말할 장면이지만, 나는 안다. 연꽃들에게 지금 이 시기가 가장 바쁜 시기라는 걸.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들은 지금도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 열심히 영양분을 비축하고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쉬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이곳은 늘 그렇게 가르쳐준다.
역시나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반려견들이었다. 물론 그 아이들이 나를 반긴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냥 내 앞을 지나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보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존재니까, 오늘은 반겼다고 믿기로 했다.
반려견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커다란 몸집의 녀석은 세상 모든 냄새를 오늘 안에 다 맡아야 할 기세로 앞서가고 있었고, 보호자는 줄에 끌려가듯 뒤따르고 있었다.
둘 사이의 속도 차이는 너무 분명해서, 누가 산책을 시키는 쪽인지 잠시 헷갈릴 정도였다. 이 장면을 보며 인생도 가끔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준비된 쪽이 아니라, 의욕이 앞선 쪽이 방향을 정해버리는 순간들 말이다. 나는 그 둘을 보며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아지에게서 인생을 배우는 날이었다.
그런 모습에 혼자 웃음을 지으며 돌아오는 길, 습지 입구 한쪽에 놓인 운동기구 앞에서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1년 전에도 5년 전에도 늘 그자리에 있던 그 운동기구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운동기구들은 솔직히 말해서 어르신들께서 가볍게 몸 푸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진지하게 쳐다본 적도 없었다. 저건 아직 내 차례가 아니라고, 나는 아직 저쪽 세계 사람이 아니라고 은근히 선을 그어두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이 운동기구 앞에서 할까 말까를 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냥 지나치면 될 일을, 괜히 한 번 더 보고, 사용법 그림까지 읽어보는 모습이 스스로 봐도 꽤 웃겼다.
웃긴 건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보다도, 이 고민 자체가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아,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있구나.
이런 깨달음은 늘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이렇게 별것 아닌 장면에서 찾아온다. 거울 앞도 아니고, 병원도 아니고, 하필이면 습지 한쪽에 놓인 운동기구 앞에서 말이다.
예전에는 몸을 단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면, 요즘은 몸을 아껴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그 변화가 조금은 낯설고, 또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타지 않았다.
오늘은 산책이 목적이었다는 이유와, 춥다는 핑계를 붙였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아직은 내 몫은 아니다’라는 나만의 결론을 내려버렸다. 이상하게도 그 결론이 싫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선택의 기준이 조금씩 바뀌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나는 운동기구를 타지 않았지만,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정도면 오늘 하루는 충분히 잘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