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관리팀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본사 근무 시절, 내가 면접을 보고 채용했던 직원이라 더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경력직으로 다시 지원했었고, 나보다 두 살 어린 기혼에 사회에서는 충분히 단단해 보이던 사람이었다.
당시 나도 중국에서 막 돌아와 본사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라,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딱히 의지 할 곳이 없는 서로에게 격려를 하며 마음이 잘 맞았다.
직급이나 역할보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 허울 없이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작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그녀는 나보다 먼저 안부를 물어왔다.
메신저를 읽으며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스며들었다. 내 소식을 먼저 궁금해해 준다는 사실이 고맙고, 그만큼 걱정을 안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그녀는 이미 내 투병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이제는 괜찮아졌고, 회복 단계라고 전하자 곧바로 기쁨의 이모티콘이 돌아왔다.
그 반응이 참 사람답다고 느껴졌다.
나도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자연스럽게 회사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들 잘 지내고 있고, 회사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들은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가 내 블로그를 잘 보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제야 떠올랐다. 퇴사하기 전, 블로그 주소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는 걸.
생각 글과 책 서평을 꾸준히 읽고 있다는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 밖으로 나온 내 말들이, 회사 안에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닿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그녀도 어느새 입사한 지 6년 차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회사 생활이 녹록지 않다는 기색도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아주 직접적인 말은 아니었지만, 문장 사이사이에 피로가 스며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농담처럼 말했다.
“가끔은 선배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말을 보는 순간, 나는 잠시 멈췄다. 예전이었다면 아마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며 버티는 것이 이기것이라는 조언을 가장한 내 생각을 그녀에게 주입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득,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말한 ‘나처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뜻인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뜻인지, 아니면 지금의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의 표현인지. 그녀의 마음을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가 말한 ‘나처럼 살고 싶다’는 말은,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삶이 조금 숨 막힌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조언 대신, 그 말을 마음속에만 잠시 내려놓았다.
그녀와의 대화를 마치고, 메신저 창은 닫았지만, 대화는 쉽게 닫히지 않았다. 페달을 밟을수록 생각이 느리게 따라왔다. 숨은 규칙적으로 차올랐고, 머릿속은 오히려 더 맑아졌다.
그때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김영하작가의 에세이 <단 한번의 삶> 속 한 문장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렷하게 떠올랐다.
“떠난 사람은 루저가 아니라 그냥 떠난 사람일 뿐이다.
남아있는 사람도 위너가 아니라 그냥 남아있는 사람일 뿐이다.”
단 한번의 삶 중에서
그 문장은 그동안 내 머릿속에 문장으로만 머물러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의미가 몸으로 내려왔다.
그녀가 건넨 “나처럼 살고 싶다”는 말과, 내가 그 말 앞에서 차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던 이유가 이 문장 안에 모두 들어 있었다.
떠난다는 선택은 용기의 증명도 아니고, 패배의 결과도 아니다. 남아 있다는 사실 역시 성공의 훈장도, 옳은 선택의 보상도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이유로 머물거나 떠날 뿐이다. 그 위에 굳이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은, 남의 삶에 너무 성급한 이름표를 붙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말한 ‘나처럼 살고 싶다’는 말은, 내가 선택한 삶을 부러워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의 자리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는 마음, 혹은 다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였을 것이다.
나는 떠난 사람이 되었고, 그녀는 남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뿐이다. 그 안에 우열은 없고, 정답도 없다. 각자의 하루가 각자의 무게로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오늘에서야 그 문장이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떠난 사람도, 남아 있는 사람도 모두 자기 삶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오늘의 대화는 특별한 결론 없이 끝났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내가 쓰는 글은, 내가 떠난 자리에서 누군가의 하루에 조용히 닿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처럼 살고 싶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이 아니라 질문일 수도 있다는 것.
오늘은 그 질문 앞에서, 섣불리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