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침은 오지 않았고, 밤도 돌아갈 생각이 없는 시간이었다. 베란다 창문 앞에 서자 하늘은 색을 고르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
어둠도 아니고 밝음도 아닌, 딱 지금의 나 같은 색이었다. 이 애매한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오늘 하루의 무게를 먼저 내려놓았다.
내려놓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잠시 바닥에 두는 것만으로도 숨은 쉬어졌다.
숨을 세는 대신 좌정을 하고 앉아
생각이 가라앉는 소리를 기다렸다.
명상이라고 하기엔 잡생각이 너무 많았고, 잡생각이라고 하기엔 나름 진지했다. 이쯤 되면 ‘생각 감상’ 정도가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침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차 한 잔을 들고 서재의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에 앉는 순간부터 사람은 괜히 진지해진다.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주는 약 2000년 전의 고전, <맹자>를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히는 시간이었다. 맹자는 늘 나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그 기준은 어디서 왔는지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세가 바르게 고쳐 앉고 허리를 꼿꼿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번 주, 나는 전혀 다른 책을 펼쳤다.
<글로벌 AI 트랜드>.
하나는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하나는 인간이 만든 기술을 다룬다.
시대도, 언어도, 속도도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 둘이 묘하게 연결된다. 맹자가 묻던 ‘기준’은 AI 시대에 더 중요해지고, AI가 제시하는 속도는 맹자의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이런 경험은 책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0세기의 과거에서 22세기의 미래로 며칠 만에 이동하는 이 왕복 여행은 교통비도 없고, 시차 적응도 필요 없다. 다만 생각은 조금 피곤해진다. 그래도 이 피곤함은 나쁘지 않다.
오후에 며칠 전 사고로 정비소에 맡겨두었던 차가 돌아왔다. 기왕 정비소에 간 김에 눈에 밟히던 흠집 몇 군데도 추가 비용을 들여 다 고쳤다.
예전에는 ‘이 정도면 그냥 타지’ 했던 상처들인데, 이번엔 갑자기 다 고치고 싶어졌다. 마음이 먼저 깔끔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차를 받아보는 순간 당시 누군가에게 보냈던 나의 화를, 전부 이 차에 실어 정비소로 보낸 것 같았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찌그러짐은 차에 있었지만, 사실 그 안에는 감정도 함께 들어 있었던 셈이다. 마치 새차처럼 말끔해져서 돌아온 차를 보며 미소가 지어졌다.
‘돈이 좋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어 잠시 마음이 쓰라렸다.
감정은 시간이 필요한데,
흠집은 카드 한 번이면 사라진다.
인생이 늘 이렇게 단순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나왔다.
잔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은 차를 보니, 이번 주 내내 쌓였던 화도 같이 닦여 나온 기분이었다.
완벽한 해결은 아니지만, 오늘은 이 정도 정리면 충분하다.
차에 올라 보니 정비소에서 내부까지 말끔히 세차를 해줘서 더욱 상쾌한 기분으로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유난히 차분하게 들렸다. 아마 차가 새로워져서가 아니라, 내가 조금 가벼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나는 과거와 미래를 오가고, 화를 보내고, 돈으로 위로받고, 차와 함께 감정을 정비했다. 이 정도면 꽤 열심히 산 하루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화보다 차가 더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