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4.번아웃과 보어아웃의 의미

by 마부자

오늘도 한 권의 책과 오전을 보냈고, 책장을 덮은 뒤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실내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이 동선은 이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익숙해졌고, 책을 읽고 몸을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하는 나만의 루틴이 되었다.


운동을 할 때면 늘 유튜브를 켜두는데, 보통은 하와이대저택의 영상을 틀어놓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말의 속도와 호흡이 페달을 밟는 리듬과 잘 맞아 운동을 방해하지도, 생각을 과하게 끌고 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알고리즘이 다른 영상을 하나 추천했다. 지식인사이드라는 채널이었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등장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인데, 어느새 하와이대저택만큼 자주 보게 된 채널이기도 하다.


(5) 일머리 좋은 사람들이 일하기 '3분' 전에 하는 남다른 생각ㅣ지식인초대석 EP.87 (김경일 교수) - YouTube


오늘의 패널은 김경일 교수였다. TV에서 익숙하게 보던 얼굴이지만, 나에게는 그의 책 <적정한 삶>을 통해 인지심리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만든 사람이라는 점에서 조금 다른 결로 다가왔다.


영상의 주제는 ‘일머리 좋은 사람들이 일하기 3분 전에 하는 생각’이었다. 일이라는 것을 다루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귀를 기울이게 했다.


그러다 중간쯤에서 나도 모르게 눈과 귀가 동시에 멈추는 단어가 등장했다.

번아웃, 그리고 보어아웃이라는 말이었다.


번아웃은 나에게 익숙한 단어였다. 지나치게 몰아붙이다가 결국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고, 사실 내가 회사를 퇴사한 이유를 설명할 때도 오랫동안 이 단어를 사용해왔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26-02-04_192618.png?type=w1 사진출처: 지식인사이트

그 말이 가장 이해받기 쉬웠고, 나 스스로에게도 납득이 되는 설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명하기 편한 말은 대체로 질문을 줄여주지만, 대신 생각도 함께 줄여버린다는 사실은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보어아웃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영상을 끝까지 보고 운동을 마친 뒤,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영상을 한 번 더 재생했다. 이번에는 운동할 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말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들었다.


번아웃은 과도한 요구와 책임으로 인해 에너지가 한꺼번에 소진되는 상태를 말하고, 보어아웃은 지나친 단조로움과 무의미함 속에서 스스로가 조금씩 말라가는 상태라고 했다. 불타서 꺼지는 것이 아니라, 마르면서 사라지는 쪽에 가깝다는 설명이 오래 남았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26-02-04_192756.png?type=w1 사진출처: 지식인사이트

흥미로웠던 점은 이 두 개념이 태어난 배경이었다. 번아웃은 미국식 직업윤리에서 비롯된 증상이고, 보어아웃은 유럽의 직업윤리에서 등장한 개념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미국식 직업윤리는 성과와 속도, 경쟁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문제는 늘 ‘과도함’에서 발생하고, 유럽식 직업윤리는 일의 의미와 균형을 중시하기 때문에 일이 지나치게 비어 있거나 스스로의 쓸모를 느끼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이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을 고쳐 잡게 되었다. 내가 회사를 떠난 이유는 정말로 번아웃이었을까, 아니면 매일 반복되는 일 속에서 점점 나 자신이 필요 없어지는 느낌을 견디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곰곰이 돌아보니 나는 불타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식어 있었던 사람에 더 가까웠다. 해야 할 일은 있었지만, 그 일 속에 나라는 사람이 들어갈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보어아웃은 겉으로 보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바쁘지 않기 때문에 힘들어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스스로도 아프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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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 그 상태를 꽤 오래 정상이라고 착각하며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두 증상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직 정답을 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몇 가지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바쁨이 아니라 의미를 점검하고, 하루에 한 번은 내가 그 일 안에 있는지를 묻는다. 성과보다 지속 가능한 리듬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 탈진을 막는 길이다.


번아웃이든 보어아웃이든, 결국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일이 아니라 일과 나 사이의 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두 개의 단어를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과거의 선택 하나를 조금 더 정확한 언어로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독서는 충분한 역할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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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1. 하루종일 아래층의 반려견이 하울링을 해주지 않아 독서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조금 걱정은 되지만 집중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 감사했습니다.


2. 고객으로 만나 선,후배 사이가 된 후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 미국을 발령이 나서 간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주었습니다. 조만간 대구에 놀러오겠다는 후배의 말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3. 저녁에 막내가 집에 있는 잔반을 모두 넣고 계란후라이 3개까지 넣어서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별것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너무 맛있었습니다. 특별한 재료가 아니어도 웃으며 함께 식사를 하는 그 순간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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