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황석영 작가의 소설 <할매>를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사실 이 책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황석영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책을 골랐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조금 안다고 믿고 있었고, 그래서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이미 이야기를 만들어 두었다.
역사를 다루는 작가. 시대를 통과해온 인물들.
그래서 이 책 역시 한 여성의 일대기, 한 할머니가 살아온 굴곡진 삶의 이야기일 거라 짐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내가 작가 한 명 더 얹어 쓴 셈이다.
읽기도 전에 결론을 먼저 만들어 놓았다는 걸,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아 바로 알게 됐다.
이 소설은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선입견이 얼마나 쉽게 이야기를 왜곡하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쉽게 안다고 착각하는지를 이 책은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야기의 세부는 서평과 남은 이야기로 남겨두기로 했다.
오늘의 일기에서는 책의 내용보다 제목 하나에 머물고 싶었다.
‘할매’라는 말이 불러온, 내 기억 속의 할머니에게로.
우리 할머니의 존함은 성은 이 이름은 행실을 쓰셨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할머니와 다락방에서 함께 잠을 잤다.
지금도 할머니 얼굴을 그려보라면, 나는 꽤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또렷하다.
사실 사진보다 기억이 더 선명한 사람도 있다.
할머니에게서는 늘 담배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냄새가 싫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환희 하나 사와라.”
100원을 쥐여주시면, 돌아올 때는 늘 100원이 더해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200원짜리 청자를 피우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더 독한 100원짜리를 피우신 건, 손주에게 줄 용돈을 남기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땐 몰랐고, 지금에서야 이런 계산을 해보는 나 자신이 조금 웃기기도 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락방에는 늘 작은 백열등 하나가 켜져 있었다.
할머니는 그 어두운 공간에서 목걸이의 암수를 끼우는 부업을 하고 계셨다.
열 개를 끼우면 1원.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손톱에 피가 맺힐 정도로 그 일을 도왔다.
천 개를 끼우고 용돈 100원을 받기 위해, 그때의 나는 꽤 성실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은 돈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는데, 그땐 딱 100원짜리 가치로만 계산했다.
할머니와의 기억은 밤이 되면 더 또렷해진다.
발이 늘 차가웠던 나에게 할머니는 사람은 발이 따뜻해야 온몸이 따뜻해진다며, 자신의 발로 내 발을 덮어주곤 했다.
나는 아직도 발이 차다.
혈액순환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아내가 내 발에 닿아 깜짝 놀랄 만큼 차갑다고 말할 때면, 나는 이유 없이 할머니 생각이 난다.
아내는 모른다. 이 차가움에 이렇게 긴 사연이 들어 있다는 걸.
그런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내 옆에서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그날 아침,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늦잠을 자고 허둥지둥 학교에 갔다.
그때의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에, 가장 평소처럼 행동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날의 울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울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한동안 나는 다락방에 올라가지 못했다.
잠도 그곳에서 자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자며, 자연스럽게 다락방의 시간에서 멀어졌다.
그곳에 남아 있던 냄새와 온기, 밤의 감각까지도 함께 밀어냈다.
나쁜 기억이어서 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선명해서,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기억하지 않기로 선택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 선택이 이렇게 오래 갈 줄은,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락방은 생활에서 사라졌고, 할머니의 존재도 조용히 뒤로 밀려났다.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로.
오늘 ‘할매’를 읽으며 그런 기억들이 불쑥 돌아왔다.
소설 속에 할머니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데도,나는 그동안 닫아두었던 다락방 문을 다시 열고 있었다.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들어가지 않기로 한 방처럼, 오래 방치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오늘의 독서는 그 문 앞에 나를 다시 세워두었다.
오늘 ‘할매’를 읽으며 떠올린 할머니는 기억 속에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외면해온 시간의 한쪽에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십 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덮어주지만, 덮이지 않는 감정도 함께 남겨둔다.
나는 그 감정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마주했다.
늦었지만, 그래도 아예 안 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책은 늘 이렇게 다가온다.
새로운 이야기를 건네기보다,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지나쳐왔던 기억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놓는다.
오늘의 독서는 과거를 다시 살게 한 시간이 아니라,
그동안 미뤄두었던 마음 앞에 잠시 멈춰 서게 한 시간이었다.
오늘 내가 떠올린 짧은 할머니의 추억이,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께도 각자의 소중한 할머니를 잠시 떠올리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1. 포항에 있는 둘째와 전화통화를 40분을 했습니다. 요즘 근무지에서 힘든 일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격려와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아들이 아빠에게 근심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2. 화요일 볼링 정기전이 있는 날이지만 어깨가 아픈 나는 집에서 쉽니다. 함께하는 형님께서 전화가 오셨습니다. 자신의 경험으로 치료한 오십견의 치료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3. 지난 1월 부터 매일 새벽에 들어오던 막내가 오늘 올 해 들어 처음으로 9시에 귀가를 했습니다. 내일부터 개학이라 오늘은 일찍 쉰다고 하니 모처럼 걱정없이 잠들수 있는 이 시간에 감사했습니다.